어머니 하나님’을 뜻하는 성경구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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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09 19:12 조회298회 댓글0건본문
어머니 하나님’을 뜻하는 성경구절이 있는가?
어머니 하나님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 4장 26절이다. 안증회 인터넷 사이트(www.watv.org)를 통해 소개된 위 성경구절과 그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갈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모든 성경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기록한 책으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딤후 3장 15∼16절). 마태복음에서는 아버지로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표현했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어머니로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 얻을 백성들에게는 틀림없이 아버지 하나님도 계셔야 하고 어머니 하나님도 계셔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서는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안증회 인터넷 사이트 내 ‘하늘 어머니’ 코너 중).
성경 갈라디아서가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다는 주장이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갈 4:26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위 성경구절 중에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인가 보다. 위 성경구절이 어떻게 해서 그런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과연 성경구절의 ‘어머니’가 지금 우리들의 어머니와 같은 뜻을 말하는지, 그리고 결국 그것이 그들이 말하고 싶은 어느 특정인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힌트도 남기도 있지 않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이트를 좀 더 살펴보자. 흥미로운 내용이 계속 나타난다. 내용은 위와 비슷하다.
“성령은 성삼위일체로 볼 때 성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뜻합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는 곧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오라,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도 알아야겠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아버지 어머니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겠습니다. 오직 성령과 신부께 나아갈 때 인류를 소성시킬 수 있는 생명수를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결코 더하거나 빼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육을 입고 성령과 신부로서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 아버지 하나님, 신부 되신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를 바르게 알고 영접하며, 원수 마귀의 어떠한 간악한 훼방과 미혹이 있더라도 믿음을 굳건히 해서 저들을 다 물리칠 수 있는, 기드온의 용사와 같이 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계셔서 기쁘고 하늘 어머니가 계셔서 행복합니다. 끝까지 시온에 거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계명을 지키고 생명수 주시는 성령과 신부를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증거하는 가운데,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영생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계 22:17~19에 대한 해설이라며 언급한 내용이다. 얼토당토 않는 내용이 앞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령=성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삼위일체라는 기성교회의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슨 말인지 기본부터 이해를 못한 모양이다. 계 22:17~19은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구절과 거리가 멀고, 더욱이 ‘성령=성부 하나님’이라는 식의 설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양태론’과 같은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계 22:17~19에서 나오는 ‘신부’라는 단어를 역시 ‘어머니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안증회측은 성경의 ‘어머니’, ‘신부’, ‘예루살렘’ 등의 단어들을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어느 특정인물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성경으로 그 내용을 입증하려고 했으니 과연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당연할 것이다.
▲ 먼저 갈 4:26을 살펴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6, 개역개정).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전후 문맥을 살펴보자. 갈 4:21~5:1까지다. 아래 성경 본문을 먼저 편견 없이 한 숨에 ‘쭉~’ 읽어보자. 내용의 무게중심이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본문의 무게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너희는 약속의 자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자’ 등일 것이다. 읽는 이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발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것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26절의 ‘어머니’는 무슨 의미일까? 갈라디아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율법과 은혜를 혼동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에 여전히 눌려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권면이다.
위 본문은 그 갈등을 잘 설명해 주기 위해서 하나의 비유를 들었다. 바로 아브라함의 두 여인이다. 하갈과 사라를 지칭한다. 바울은 이 두 여인을 예로 들며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한 것이다. 즉, 하갈은 율법 아래 놓여서 여전히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사라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를 누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 바울은 ‘우리는 복음으로 자유하게 되었으니 다시는 율법의 종노릇을 하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갈 2:20)이라고 말한 바울이 사는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바울의 고백은 베드로의 실수 때문에 나온 것이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복음이 그들을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베드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예루살렘 총회도 그것을 주었기 때문이다(행 15장).
이때 야고보에게서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방문하게 되었다. 순간 베드로는 그 식사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게 된다. 마치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이전 유대인의 사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향해 호통을 친다. ‘예수=그리스도’임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제 자유함이 있는데 아직도 옛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 믿는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데 아직도 율법의 종처럼 살려고 하느냐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오늘날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갈 2:20의 고백을 하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개역개정).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다.
다시 갈라디아서 4장으로 돌아가 보자. 아브라함의 두 여인(사라와 하갈)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기 쉽게 도표로 만들어 보자(그랜트 오스본, <갈라디아서> LAB 주석, 성서유니온선교회, 2006, p.240). 다음과 같다.
사라 | 하갈 | 의미 | |
아이의 이름 | 이삭 | 이스마엘 | 이삭은 하나님의 개입을 상징한다. 이스마엘은 일반적인 출생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
아이가 가진 상징 | 약속의 언약(은혜) | 시내산 언약(율법)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시내산의 모세의 언약보다 선행한다. |
근원 | 천상의 예루살렘에 기반을 둠(성령) | 현재의 예루살렘에 기반을 둠(육체) | 현재의 예루살렘은 율법주의를 상징하고, 천상의 예루살렘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상징한다. |
삶에서 나타나는 결과 | 자유하게 한다 | 종속시킨다 |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경험하기를 원했다. |
갈 4:26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사라와 연결된다. 즉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약속으로 받은 기적의 자녀인 이삭의 어머니로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가리킨다. 이 언약은 ‘새언약’인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된다.
갈 4:25의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하갈과 연결된다. 유대인의 사상 중에는 천상의 예루살렘이 있으며 지상의 예루살렘은 단순히 그것의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개념이 있었다(시 87:1-3, 사 54:10-14, 겔 40-48장 참조). 바울은 율법에 집착하지 않는 믿음이 우리 구원의 원천임을 보여 주려고 ‘예루살렘은 곧 우리 어머니’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그랜트 오스본, p.245).
▲ 안증회측의 '어머니 하나님' 주장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서 갈 4:26의 ‘어머니’는 믿음의 후손들, 참된 교회와 연결되는 의미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다시는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존 스토트도 같은 의견이다. “여종인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이 지상의 예루살렘 혹은 유대교를 나타낸다면, 자유 있는 여자로서 이삭의 어머니인 사라는 하늘의 예루살렘 혹은 기독교 교회를 나타낸다”고 했다(존 스토트, 갈라디아서 강해, IVP, 2007, p.157).
어머니(갈 4:26) 외에 어린양의 아내(계 21:9 외), 신부(계 22:17 외)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안증회측에서는 특정인물과 동일하게 연결시켜서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그 용어들 역시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안상홍, 장길자 등 특정 사람을 비성경적인 논리로 신격화시켜 추종하는 그런 단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교회인 것이다. 따라서 안증회측이 주장하고 싶은 ‘어머니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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