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생명력이고, 그 생명력은 하나님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육, 성장, 번성 그리고 탈바꿈(쇠퇴, 죽음)의 과정을 진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우리의 육신을 포함하는 생령(生靈)인 사람도,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기에, 스스로 생육, 성장, 번성, 탈바꿈하는 능력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과 그 나라 및 그 능력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자는 그 생명력도 역시 모르거나, 믿지 않을 것이다.
• 그 믿지 않음 때문에, 또한 그 생명력의 능력을 힘 입을 수도, 그래서 그 능력이 자신 안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없다.
•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피조물의 능력만을 믿고 활용하며, 그 범위 안에서만 살아가는 자들을 말하며, 불신자요, 인본주의자인 것이다.
• 그들이 과거의 사람이든, 현대인이든, 또 그들의 문화와 지식의 정도가 어느 만큼이든, 그 생명력을 모른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 창조능력인 생명력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능력(7. 7. 7)이고, 피조물의 능력은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장소, 또 어느 누구의 능력이든, 불완전하고 유한할 수 밖에 없다. (6. 6. 6)
• 이 피조물의 능력 밖에 모르거나, 또 그 능력만 인정하게 하는 그 세력(지식, 태도, 방법……)을 악의 세력이라 하고,그 세력들을 사탄, 마귀, 귀신 등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
• 또 그렇게 피조물의 능력만을 인정하거나 숭배하는 것을 죄라 하고, 바로 이 죄 때문에 병이 들고, 죽음에 이른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병과 죽음은 하나님과 그 나라를 모르거나, 도달하지 못함의 뜻이다.)
• 예수님 당시에, 과학이나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음도 축사의 이유가 되겠지만,
•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피조물의 능력이나 그 지식에 사로잡혀,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의 생명력을 보고 알아 차리지도, 활용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병과 사망의 상태에 직면하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축사”라는 표현과 행위를 통해 피조물의 능력을 초월하게 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생명력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그 생명력 안에서 스스로 병을 치유하고, 사망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 바로 “축사”를 행하신 이유이다.
• 그래서 그들에게 “믿음”을 먼저 요구하셨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 능력인 생명력을 믿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생명력이 그를 치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곧 그 하나님이시므로, 그 생명력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을 분별할 힘이 없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불신자들까지도. 우리 몸 속에 많은 자연치유의 능력 그리고 병에 대한 저항력 등이 있다고.
• 또 요즘 많은 불치의 암 환자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는 것을 본다. 이는 온통 인공으로만 뒤덮여 있어, 사람으로 대표되는 피조물의 능력 외에는, 어디에도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도시의 모습이기에, 인공보다 하나님께서 본래 만들어, 베풀어 놓으신 천연의 상태에 들어가 살다 보면,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그 어떤 능력을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게 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몸 속과 자연 속에 있는 창조주의 생명력이 그 힘을 발휘하여, 생육, 성장, 번성, 쇠퇴의 자연스런 과정을 정상적으로 밟게 함으로, 불완전하고 불필요한 피조물의 능력에 의해서 비뚤어진 몸의 상태를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정상적인 과정의 상태로 회복시켜 놓으신 것들을 심심치 않게 듣고 본다.
• 이것이 복음서에 쓰여진 예수님의 축사를 통한 몸의 치유와 같은 원리이다.
• 그러나 이것 또한 최종 목표는 아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몸 치료를 위한 축사의 최종 목표는 그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그 나라를 믿고, 그 소속으로, 그 자녀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 특히 몸을 치유해주시는 것은 피조물만의 능력 속에 갇혀, 몸이 비정상적이 되어, 그 몸의 고통 때문에, 그의 지식이나 의지가 몸의 고통스런 감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고통스런 육신만 쳐다보며, 그 육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몸을 치유해 주심으로, 그의 관심(지식과 의지)을 몸에서 혼으로, 또 영이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로 옮기려는 데 있다.
•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과정의 성장을 이루기 위함이고, 또 이를 성화라 한다.
•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믿는 자만 이를 알고 받아들이므로, 그런 자를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라 한다.
• 이러한 근본적인 내용을 모르고, 그저 병든 몸만을 낫기 위해, 무작정,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마귀, 귀신)아 물러가라.”만을 소리쳐 반복한다고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혹시 병이 낫거나 어떤 변화가 있었다 해도,근본을 모르면, 깨끗이 청소되었음을 핑계로 더 많은 악한 세력이 밀려들 수가 있고, 그렇게 다시 밀려오는 그들의 목적은, 여전히 그 사람이 피조물의 능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그 나라 그리고 그 창조능력을 알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힘입어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마 12:43~45 참조)
• 겉모습만 보지 말자. 기록된 성경도 껍데기로만 이해하지 말자. 문자주의에 빠지지 말자.
• 하나님의 창조능력인 그 생명력은 분명 살아계신 능력이다.
• 2000년 전의 그 생명력의 정도가,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정도와 똑같겠는가?
• 그 생명력은 변함없지만, 피조물로서 불완전한 우리는 이제까지, 오랜 역사를 통해, 그 생명력에 의해 변화, 발전되었다.
• 이제는 그 변화된 정도의 모습으로, 또한 모든 것을 적용해야 한다.
• 예수님께서 환자의 몸을 치유해주신 목적은 단지 건강한 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몸을 극복, 초월하여 혼(정신, 마음, 내적인 부분)으로 성장하고, 계속 이어 영의 세계, 즉 하나님과 그 나라로 온 관심이 옮겨지기를 바라신 것이다.
• 또는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는, 몸의 배고픔으로 인한, 몸으로만 향하는 관심을 영의 세계와 그 생명으로 돌려, 우리의 정신 세계 속에, 영의 지식(하나님 말씀)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 마음, 정신세계에 가득 찬 지식은 “관심”이라 할 수도 있고, “생명”이라 할 수 도 있는데, 스스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라 할 수 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변화(육신적인 옛사람에서 영적인 새사람으로)를 목표로 한다. (중생, 구원, 부활)
• 육신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것은 과정에 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