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적 연구의 예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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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9:05 조회193회 댓글0건본문
마라와 엘림 (출 15:22-27)
I. 본문의 범위 및 문학적 구조
1) 본문의 범위: 출애굽기 전체 가운데 1-18 장은 출애굽을 서술하고, 19-40 장은 계명을 받고, 광야에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를 서술하고 있다. 1:1-15:21은 출애굽 자체를 다루며, 15:22-18:27는 출애굽후 계명을 받기 전에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다루고 있다. 15:22 이전에는 출애굽을 목격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림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15:22부터는 출애굽이 끝나고 광야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중에서 16장은 만나를 받는 과정이므로 15:22-27과는 구별된다. 15:22-27은 광야에서의 방랑중에 물을 찾는 중에 마라에 도착하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엘림에 이른 여정을 다루고 있다.
2) 문학적 구조
I. 위기: 마라에 이름 (22-23)
A. 홍해에서 수르 광야로 (22a)
B. 사흘동안 물을 얻지 못함 (22b)
C. 쓴물을 마라라 명명함 (23)
II. 기도와 응답 (24-25)
A. 백성들의 원망 (24)
B.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음 (25a )
C. 여호와의 응답 (25a )
1) 나무를 지시하심
2) 모세가 나무를 던짐
3) 물이 달아짐
III. 법도와 율례의 제정: 치료하는 여호와 (25b-26)
A. 법도와 율례를 정하심: 시험을 위하여 (25b)
B. 치료하는 여호와 (26)
1) 순종의 조건: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 기울이며, 규례를 지키면 (26a)
2) 순종의 결과: 질병이 내리지 않으리라 (26a )
3) 선언: 여호와는 치료하는 여호와 (26a )
IV. 결론: 엘림에 이름 (27)
A.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 엘림 (27a)
B. 장막을 침 (27b)
II. 분석적 관찰
1) 홍해를 건넌 직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 여행의 시작은 마라의 만남과 함께 시작된다. 백성들은 출애굽의 감격으로만 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광야에서 견딜 수 있는 물이 필요하였다. 생존을 위한 물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삼일동안은 순조로왔다. 그런데 마침내 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물은 써서 먹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 지역의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마라라고 이름 붙이는 데는 그들이 한계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들에게 다가온 위기를 마라라고 이름 붙이며 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위기를 그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대답을 찾지 못하였다. 백성들이 위기를 당하면 지도자를 바라볼 뿐이다. 위기 때문에 그들에게 중보자가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시는가가 중요하다. 모세는 부르짖고, 하나님은 나무를 지시하시고, 모세는 다시 지시한 나무를 물에 넣었다. 그리고 나니 물이 달아졌다. 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3) 하나님은 마라의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백성을 가르치신다. 갑자기 사건이 지난 후에 법도와 율례를 정하신다. 그들이 계명을 지키면 질병을 치료하고 모든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심을 약속하신다. 애굽인들에게 내렸던 열두재앙을 일종의 형벌이나 경고로 이해한다. 열재앙을 부리시는 하나님이 강조된다. 동시에 주어진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강조된다.
4) 지명의 이름이 엘림인데 엘림이란 말은 원래 나무라는 말로서 나무가 존재하기 위하여 물이 풍부함으로 사막의 오아시스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명령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그들은 엘림에 이르게 된다. 엘림에는 그들이 그동안 찾았던 단물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로서 갈증을 해소하고 쉴 수가 있다. 그들에게 엘림은 최종 종착지가 아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하여 힘을 얻는 곳이다.
III. 통전적 해석
1) 이 본문은 홍해에서의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순종을 통하여 기적에 이르도록 돕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중에 쉴 수 있도록 주신 엘림에 관한 본문이다.
2) 출애굽의 경험이 출애굽 이후의 고난을 저절로 이기게 만들지는 못한다. 계속되는 과정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다. 계속 되는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단물이 필요하다. 마라의 문제는 물이 쓴 것이 아니다. 물이 쓰다고 미래를 포기하며, 자신의 삶을 마라라고 포기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마라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원하신다.
3) 회중의 불평은 당연한 것이다. 이 불평이 출애굽의 행로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가나안을 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면 감내할만한 긍정적인 것이다. 지도자는 이 불평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중보자의 역할이다.
4) 마라의 물을 달게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지시한 나무를 던진 것이다. 그것은 순종이 기적을 이루는 것임을 가르친다. 순종이 저절로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할 때에 그분이 기적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방법이 순종임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본문은 십계명이라는 계명이 주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계명이 주어졌고 계명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남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그들이 경험한 쓴물은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훈련이며, 순종을 통해 우리는 치료의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순종을 배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엘림의 안식처를 마련하신다. 엘림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지치지 않고 가나안에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엘림이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서 신앙의 여정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힘이 된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구원받은 이후 천국 가는 성도들에게 천국을 그려주며 천국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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