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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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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장3절4절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피조물 고백기도

 

나는 영생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사탄을 정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나는 믿음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되었습니다.나는 거룩한자입니다.

나는 모든것을 탁월하게 할수있는 은혜가 있습니다.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며 하나님의 생명과본성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영생은 나의것입니다.의는 나의것입니다.

죄를 죄거함은 나의것입니다.구원 구출 해방 자유는 나의것입니다.

치유와 신성한건강은 나의것입니다.형통은 나의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있습니다.나는 아가페 사랑을 할수있습니다.

나는 지혜가 있습니다.나는 상황을 바꾸며 항상 승리하는자입니다.

나는 내인생의 선지자입니다.나는 영혼구원자이며 킹덤빌더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사 우리를 영광스런 아버지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개혁)킹덤빌더교회목사 이상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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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에 있어서 음악의 사용: 성서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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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9:03 조회256회 댓글0건

본문

목회에 있어서 음악의 사용: 성서적 고찰



I. 들어가는 말
이 글의 목적은 목회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성서적 타당성을 밝히는 것이다. 내가 기준으로 삼는 성서적인 틀은 성서에는 계시의 내용을 강조하는 토라 신앙과 계시의 형식으로서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하는 성전 신앙 두가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이다. 전자는 이미 우리 안에 형성된 성경의 권위아래 계시의 내용을 강조하고, 후자는 계시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실재(reality)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자는 계몽주의 시대이래 강조된 이성과 하나님의 내재성에 근거한 반면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드러난 직관과 감성에 근거하여 만나는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이 강조 된다. 음악이란 20세기에 모든 교파의 기초를 이루게 되는 성령운동의 물결아래 경배와 찬양 (이하 찬양 운동이라고 명함)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운동은 하나님의 현존을 접하기 원하는 성전 신앙과 관계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음악을 사용하는 찬양운동의 한계와 가능성을 신구약 성서에 나타나는 토라 신앙과 성전 신앙의 틀로 살펴보고 그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II. 음악 또는 찬양? 
목회에 사용되는 음악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지 간단히 용어 정의를 먼저 하려고 한다. 음악이라는 말은 이미 신앙고백적인 전제를 벗어난 중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음악 그 자체의 전문적인 특성을 제시하는 반면에, 찬양이라고 하면 반드시 음악을 동반하지 않고도 가능하기에 둘 다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한다. 이 글에서는 찬양 안에 음악이라는 형식과 신앙고백이라는 내용이 모두 담긴 것으로 찬양이라는 용어를 정의함으로 출발하려고 한다. 

찬양에는 이 두 가지가 있는바 하나는 형식적인 것이요 또 하나는 내용적인 것이다. 찬양의 내용으로서 음악은 책상에서 논해지는 것이거나 특수한 집단의 소유가 아니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상황 속에서 인간 안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언어는 아니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되,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지고의 기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나타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찬양의 형식인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음악의 생명을 회중들과 거리가 있는 고고한 곳이 아니라 할수 있는대로 회중들의 내부에서 흘러 나오는 감정의 드러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찬양에는 내용으로서 이야기(story)를 담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한 개인이 겪은 주관적인 경험이었지만 점차로 이 고백이 신앙공동체에서 수용되고 나중에는 후대 자손들에 의하여 권위 있는 찬양의 내용으로 변화된다. 나아가서 후대인들은 이 전승을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고백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게 되는 것이다. 

III. 신구약 성서에 나타난 찬양: 토라 신앙과 성전 신앙의 관점에서 
성서는 찬양의 형식인 음악이 고대로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 진술한다. 구약에서 음악은 처음에는 신앙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다. 사람들이 탄식하고 애통하는 자리에서 음악은 자연적인 형식을 제공하였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격은 노래를 통하여 표현되었다 (출 15 장). 예언의 고전적인 형태로서 황홀경에 이르는 도구로서 노래가 사용되었다 (삼상 10:5). 다윗은 혼란스러운 사울의 영을 돕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였다. 초기 예언자들은 자아를 상실하는 황홀경에 돌입하고, 이러한 황홀경에 이르기 위하여 음악의 도움을 받았다 (왕하 3:15). 

음악의 사용이 자연스럽던 고대를 지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특히 신명기 사가의 입장에서 음악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비판 받았다. 그 이유는 음악이 이스라엘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에 이방 종교와 구분되지 않아서 자칫 야훼 종교의 정체의식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때 들은 것은 노래하는 소리였는데 (출 32:18),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대신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마음을 춤과 노래에 담았던 광경이었다. 갈멜산상에서 엘리야와 대립했던 바알 선지자들의 황홀경을 유발하는 행동에는 시끄러운 음악이 동반 되었다 (왕상 18:26-29). 이런 면에서 신명기 문헌은 우상숭배에 이르기 쉬운 음악의 사용을 절제 하였다. 이와 같이 계시의 내용을 강조하는 토라 중심의 신앙을 보여주는 신명기 문헌에서는 전체적으로 음악 사용을 절제하고 음악의 내용을 강조 하였다. 이것은 가나안 종교와의 대립 속에 이스라엘 종교의 구별을 강조한 시대적인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찬양의 형식과 내용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앙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된 것은 시편을 통해서이다. 역사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에 의하여 만들어진 시편은 공동체의 예배를 통하여 그 권위가 입증되었다. 예배 때 시편의 낭송은 히브리어 고유의 운율을 통하여 표현되었다. 처음에는 시편이 독특한 이스라엘의 개인적 민족적 경험에 근거하여 발전 되었으며, 나아가서 이렇게 형성된 시편의 내용과 형식은 후대 사람들이 새롭게 갖게 된 신앙고백을 담아서 표현하는 일정한 범례가 되었다. 즉, 후대 사람들이 새로운 시편을 창작하기 보다는 이미 주어진 시편에 자신들의 감정을 담아 암송하게 된 것이다. 시편에는 찬양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 되었다. 

이 시편은 내용에 따라 크게 성전 중심의 시편과 토라 중심의 시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초기 포로이전의 솔로몬 성전과 포로후기의 제2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나타났고, 후자는 포로기를 전후하여 성전을 상실한 시대에 대두되고, 후기에는 성전 시편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토라를 중심으로 하는 시편은 (시편 1 편, 19 편, 119 편)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행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굳어진 말씀 자체를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을 경건으로 규정하는 신앙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음악의 형식보다는 말씀이라는 내용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성전 중심의 시편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대행인인 메시야를 찬양하고,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격이나 기쁨, 또는 성전에서의 회중 예배의 감격이나 기다림 등을 표현하였다 (시편 2 편, 24편, 42편, 84 편, 123 편). 

성전 중심의 신앙을 제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역대기서에 나타난다. 역대기서는 예배제도가 어떻게 다윗 왕조를 통하여 발생하고, 후기에 제2성전시대를 준비하였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역대기에 관한 최근 이론들은 역대기의 초점이 왕정 자체가 아니라, 제의제도를 옹호하는 합법성을 위하여 왕정을 강조한다고 보는 것이다. 역대기서는 포로후기 공동체의 합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제도를 모세와 다윗의 권위에 의지하여 설명함으로 제의 제도 자체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성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레위인의 역할은 성막을 옮기고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성전이 완성된 이후에 그들의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 역대기 23장에는 어떻게 음악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의 직제가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레위족속들의 역할은 이제 성전을 돌보는자, 유사와 재판관, 문지기 그리고 성전 찬양대들로 이루어 졌다. 성전 안에서의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안에 옮길 때 레위 사람들이 찬양하였다 (대상 16:4-36). 이후부터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문가로 세움을 받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현존을 준비하기 위하여 음악이 강조된 것은 토라를 강조하는 신명기적인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열왕기상 8:54-66와 역대기하 7:1-10을 비교해 보면 성전 봉헌식 때 열왕기하는 축복기도로 마치는데 반하여 역대기하는 전문적 레위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추가된다. 이와 같이 다른 서술은 찬양의 도입에 관한 서로 다른 평가들이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역대기사가의 작품에서는 이후에도 성전 예배는 음악을 필수로 하였다. 히스기야 시대에 성전의 더러움으로부터 유월절 절기를 지킬 때 레위인들이 찬양의 봉사를 하였다 (대하 29:25-28). 다시 요시야 시대에 유월절을 지키면서 레위인들이 찬양을 담당하였다 (대하 35:15). 그 이후에는 멸망할 때까지 드러난 행사를 보이지 않고, 포로 후에 돌아온 자들이 성전 지대를 놓을 때와 (스 3:0-11), 느헤미야 시대에 성벽 준공식을 할 때 레위인들의 찬양이 나타난다 (느 12:27- 43).

음악의 이종교적인 사용을 경계하는 신명기 문헌과는 달리 역대기 문헌은 음악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그 내용이 이교(異敎)와 구별되는 검증된 음악들을 구약의 제도권 안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찬양의 역사에서 다윗의 개혁이 의미하는 것은 찬양대나 지휘자의 위치가 예배시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대가 드리는 찬양의 내용은 예언자들의 예언과 같은 위치를 점하게 된다. 오늘날로 말하면 찬양이 예배의 부속품이 아니라 말씀과 대등하게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최적의 상태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성전 신앙과 토라 신앙이 조화를 이룬다면, 신약에서는 두 개의 다른 신앙의 형식이 말씀과 성령의 조화로 나타난다. 말씀과 성령의 관계는 신약의 교회 역사가운데 전통이 담지 못하는 역사를 창출하는 성령운동을 어떻게 전통과 관계지을 것인가 하는 질문 형식으로 대두 되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에 오순절 사건을 시작으로 많은 은사 운동을 비롯한 급진적 운동들에 대한 논쟁들은 성령운동이 예수의 권위에 종속되는 것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말씀과 성령의 관계에서부터 그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 때부터 활발하던 성령에 대한 논의는 요한복음을 통하여 정리된다. 요한복음 14장과 16장에는 이 성령을 보혜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한복음 14:16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함으로 성령이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과 동일한 보혜사임을 밝히고 있다. 성령은 새로운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이미 역사 속에서 드러나신 예수님 자신을 대신할 뿐이다. 

이와 같이 성령은 예수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그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할은 예수 자신과 동일하다. 성령의 역할은 예수님의 권위를 넘어가지 못한다.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을 말한다(요 16:13). 성령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다 (요 16:26). 성령은 예수님 대신 우리 곁에 와서 그분의 말씀을 드러내시고, 그분의 현존을 나타낸다. 예수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곁에 계신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그분의 말씀이 정경의 형태로 우리 앞에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참 계시되도록 역동성을 제시하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성령은 말씀을 드러나게 만든다. 성령은 말씀이 살아 있게 하지만, 말씀의 권위를 넘어 갈 수 없다. 

IV. 목회에서 음악의 역할
이제 이와 같은 성서적인 고찰이 실제 목회에서 찬양운동에서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음악을 사용한 찬양운동은 2000년 동안 교회의 제도권 아래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 성령운동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성령운동은 이제 교파를 추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권위있는 하나님의 역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운동이 시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모더니즘을 지나 대두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찬양운동은 계시의 내용을 강조하는 이성중심의 틀과는 다르게 게시의 형식을 강조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인간의 상황 속에 들어가 이성보다는 직관과 감성을 강조한다. 이성이나 직관이나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이성은 자기 한계를 무시하고 자기 절대화의 남용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며, 이제는 찬양운동이 직관과 감성을 사용하여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기에 찬양운동이 중요한 것이다. 

2. 찬양운동을 이끄는 자들은 찬양운동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무식의 소치가 아니라, 토라 신앙이라는 성서의 한 줄기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비판은 신명기 신학이 음악이 가나안 종교나 세속적인 종교와 구별되지 않고, 전통을 무시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는지 의심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말은 찬양운동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무조건 나은 것이 아니고, 잘못 사용된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찬양운동이 세속주의와 비기독교적인 경향으로부터 구별되는 정체의식을 이루기 위하여 내용과 형식의 비판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3. 찬양운동은 형식 비판을 통해 청중을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찬양운동이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고의 기쁨을 표현하는 도구인지를 돌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음악의 도입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독교에 자리잡은 순간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갖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변혁시켜야 (transform) 한다는 것이다. 성서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지, 이방종교나 요사이 유행하는 세속 음악과 뉴 에이지등의 물결 속에서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얻을 수 있는지 비판을 자체적으로 하여야 한다. 찬양은 기독교 문화의 창출 과정을 보여주는 바 현실적으로 회중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보수적인 정서와 진보적인 정서의 적절한 조화를 통하여 이루어 진다. 회중들의 내면의 감동을 무시한 찬양은 합리화 될 수 없다.

4. 찬양운동은 그동안 오순절 운동과 많은 부흥운동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오순절의 은사운동은 은사를 쟁취하도록 유도함으로 하나님을 기다림보다, 끌어 내리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부흥운동 가운데에도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신앙을 감정으로 격하하는 위험성이 있었다. 찬양운동의 핵심은 다가 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이다. 찬양운동은 오시는 그분을 기다리게 하고, 모든 회중이 함께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인간의 기교나 조작, 그리고 인간의 흥분된 감정과 상관없이 그냥 거기 계시는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이 있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현존을 매개하는 인도자, 악기, 가수들 모두 인간의 교만과 매너리즘이라는 위험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하나님의 현존을 단순한 기교로 여기지 않고 모든 인간이 피조물로서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릴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는 출발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V. 나가는 말

내가 아직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IMF가 터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그 위기와 전후해서 한국에서는 고형원씨의 부흥이라는 복음성가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이 복음성가의 가사를 살펴본 나로서는 그 가사의 신학적 깊이에 놀랐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라고 시작하는 그 노래는 IMF 전후의 한국의 교회의 상황을 노래하면서 회복을 간구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단순히 죄 자체에 머물지 않고, 죄로 인하여 이 땅이 황폐하고, 하나님이 버릴 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다시금 우리와 동행하시라는 중보자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물론 노래의 형식도 애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교회와 사회의 현장을 진단하되, 하나님의 현존과 관련된 성전 신앙을 해법으로 제시한다는 면에서 신학적으로 귀한 작업이었다. 이것은 찬양운동의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예들을 좇아, 찬양운동이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가능성을 극대화 시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삶의 용기와 힘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래의 작고, 작사자만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찬양을 사용하는 분들도 찬양의 내용에 대한 비판, 하나님의 임재가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한 교회 현장의 정서의 고려, 그리고 최전선에서 찬양을 담당한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잊지 않음으로, 새 천년 찬양운동을 통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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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나는 죄로부터 깨끗히 씻겨졌습니다.

4.나는 어둠에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5.성령께서 내안에 거하십니다.

6.그리스도 예수안에있는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7.나는 생명안에서 다스리는자입니다.

8.나는 의인입니다.나에게는 더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9.치유와건강 번영 형통 기쁨은 나의것입니다.

10.나는 모든일에 승리하는자입니다.

11.나는 아가페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2.성령님과 동행하는 나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13.나는 아가페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4.내안에는 믿음이 있고 나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gJuiA-VR4&list=PLQbQC5EwiO6SPzjrLHRedrm_dNfAOy6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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