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의 교리에서 본 복음의 이해
성경에 나오는 화목
신약에는 화목에 관련된 네 개의 본문이 나오는데, 이것을 잠시 논하면
1. 하나님이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바울의 전형적인 진술이다.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하심이라”(롬3:21~26)
2.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히브리서의 설명이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2:17)
3. 우리 주님의 천상사역에 대한 요한의 증거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요일2:1~2)
4. 요한이 내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8~10)
신약의 신앙에서 화목은 중심을 차지한다. 하나님의 사랑, 성자께서 인간의 형태를 취하신 것, 십자가의 의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중보사역, 구원의 길 등 모든 것이 앞에서 인용한 본문들이 보여 주듯 화목이라는 견지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화목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이다.
단순한 속죄가 아님
속죄는 화목이 의미하는 바의 반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속죄는 죄를 덮어 가리는 것, 치워버리거나 제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화목은 속죄가 의미하는 모든 것에 더하여,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롬5:9에서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것”을 안다.
또한“그의 피로 말미암아..화목 제물”이라는 말이 표현하는 개념은 그리스도는 우리 죄로 인한 희생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오히려 인격적 특성으로서,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완전히 의롭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감상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만큼이나 인격적이고 효력있으며 주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듯이, 그것은 또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직접적으로 피하게 했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도덕법에 표현된 거룩함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의 행위에 표현된 그 의로움의 작용이다. “정의는 나의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히 10:30, NEB)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과 모순되는 것에 대해 느끼시는 거룩한 혐오감”이다.
화목에 대하여
바울이 묘사하는 화목에 대한 세 가지 사항
1. 화목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율법에 따른 응보와 심판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과는 별도로’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의를 부여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계시하신다고 말한다. 이 계시된 의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되었다. 이것은 은혜로만 가능하게 된것이다. 은혜는 공로와 반대되는 자비로,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속전으로 구함)으로 말미암아’작용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화목에서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셨다.
2.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속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자신의 피를 뿌리신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도 언제나 예수님의 죽으심을 속죄의 사건으로 지적하며, 속죄를 대리 속죄(죄없는 분이 죄있는 자를 위해 하나님의 공정한 응보를 받음으로 그들을 대신하는 것)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향한 율법의 저주를 지심으로 우리가 저주받지 않게 하셨다. 이것이 대리 속죄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 따라서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것은 죄인들 대신에 그들의 사형 죄를 지고 희생 제물로 죽었다는 의미다(고후 5:14, 18-21).
화목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으시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3. 화목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 보인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아들을 세우셨다. “자기의 의로우심(정의)를 나타내려 하심이니....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다(롬 3:25~26) 나타내다(declare)라는 말은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바울은 십자가에서 화목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서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자비의 기초인 의와 공의를 공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이처럼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의, 바울 서신서 처음에 나오는 신적 진노의 교리에서 그처럼 생생하게 설명된 의는 신적 진노가 어떻게 소멸되었는가에 관한 바울의 교리에서 다시 한 번 설명된다.
그리스도의 죽음
복음은 우리의 창조주가 또한 구속주가 되셨다고 말한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본적으로 화목 제물, 즉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목전에서 없애버림으로써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소멸시킨 것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의다. 하나님의 진노는 응보적 정의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리
속죄물이 되심으로, 그리고 우리 대신 우리 죄의 삯을 받으심으로 장차 닥칠 응보적 정의의 공포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구속의 사랑과 응보의 공의가 갈보리에서 서로 손을 잡았다. 갈보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의로우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는’분임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인간의 죄이며,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마련해 주신 것은 진노를 평화로 바꾸어 주는 화목 제물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복음의 가장 심오한 메시지다.
신약에서 말하는 죄란 우선적으로 사회적 오류 혹은 실패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역, 하나님에 대한 도전,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그에 따른 죄책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죄란 근본악으로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구원받아야하며 그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때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화해 즉 증오와 전쟁 이후에 오는 화목으로 묘사된다(롬 5:10~11; 고후 5:18~20; 골1:20~22). 때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구속 즉 위험과 속박으로부터 속전을 주고 구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롬 3:24; 갈 3:13; 4;5; 벧전 1:18; 계 5:9). 때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희생 제사(엡 5:2; 히 9:1-10:18), 자신을 주는 행위(갈 1:4; 2:20; 딤전 2:6), 죄를 짊어지는 것(요 1:29; 히 9:28; 벧전 2:24), 피흘림(막 14:24; 히 9:14; 계 1:5)으로 묘사된다. 이 모든 개념은 죄를 제거하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해맑은 교제를 회복하는 것과 관계있다.
또한 화목의 진리라는 견지에서 다섯 가지를 간단히 언급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의 추진력,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운명,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라는 선물, 하나님 사랑의 여러 가지 차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의미다. 이들을 화목의 진리에 비추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삶의 추진력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네 가지 인상을 받을 것이다.
먼저 예수님은 행동의 사람이라는 점일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적 역할을(인자)을 수행하는 신적 위격(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친분이 깊어짐에 따라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바, 곧 그분이 하나님과 구세주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으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독특한 이중적인 자의식은 끊임없이 나타났다.(막 1:11; 9:7) 이에서 더 나아가 예수님의 메시야적 사명의 핵심은 곧 죽임을 당하시는 것이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러한 죽음을 가장 두려운 체험으로 여기셨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라는 비림받았다는 부르짐으로 외적 어두움에 필적하는 내적 어두움을 증거하셨다.
예수님이 동산에서 떠신 것은, 그 분이 죄가 되셨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단언하신 것은 자신이 실제로 그 심판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의 추진력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