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죄'보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는 악한 행동만이 아니라 악한 생각도 포함한다. 또한 죄는 개별 행위만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죄의 관념은 아주 일찍부터 생겨났다. 아담과 이브가 신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과일을 먹은 것이 죄의 기원이다. 사실 그들이 신처럼 되려는 것은 신에게 불충하는 행위였다. 결국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게다가 장남인 카인은 동생을 살해했으니 불과 두 세대 만에 인간은 신에게 불충한 죄, 오만, 시기, 폭력, 살인의 죄를 다 저지른 셈이다. 그 이야기를 신화로 치부한다 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아담과 이브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의 길을 가기보다 자기 자신의 길을 가려 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이런 악한 성향을 '원죄'라고 부른다.
아담, 이브, 카인은 모두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신이 아담에게 왜 금지된 과일을 먹었느냐고 묻자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유혹했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책임을 이브와 신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브 역시 마찬가지로, 뱀이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신이 카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카인은 저 유명한 대답을 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의 성향―"누구? 나? 내 잘못 아니야!"―은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 6장에서 신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파멸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새 출발'로도 죄를 끝장낼 수는 없었다. 시편 14는 이렇게 개탄한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사사기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끔찍한 상황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런 상황을 깔끔하게 요약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복음서에서는 이따금 유대 율법에 따르지 않는 유대인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불렀다. 예수의 적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했다(마태복음 9:10~13). 그들은 예수가 다른 독실한 유대인들처럼 비유대인과 '죄인'을 역병처럼 멀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예수는 죄의 관념을 더욱 넓혔다. 악한 행위만이 아니라 악한 생각도 죄로 규정했다. 그는 간음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욕망하는 것도 죄라고 가르쳤다. 살인만이 죄가 아니라 남을 미워하고 나쁜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죄였다. 예수는 겉으로 깨끗한 척해도 안으로 사악하고 타락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성서가 흡연, 음주, 성범죄 같은 '악질 죄'만 비난한다는 인상을 가진다. 물론 성서가 성적 측면에서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서는 부정직한 거래, 탐욕, 뇌물(보통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부르는 것),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행위, 고리대금업, 나아가 비방, 험담, 소요 선동 같은 '포괄적인 죄'에 관해서도 두루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십계명은 남이 가진 것을 탐내는 마음까지 금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내부의 죄'다. 성서는 '존경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스런 행동과 생각을 감추는 데 능숙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예수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술, 담배, 혼외정사 따위를 금하라는 정도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고대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므로 담배는 성서에 나오지도 않는다. 또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도 전혀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죄라고 보았다. 외국의 폭군은 물론 자국의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서에는 이런 주옥같은 구절들이 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애굽기 23:2).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명기 15:11).
구약의 시대에는 제사를 통해 원 상태로 돌리는 제도가 있었으므로 설령 죄를 지었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나 신과의 관계를 만회할 수 있었다. 신약성서는 예수를 궁극적인 희생으로 간주했다. 죄 없는 사람이 죄 많은 인간들을 대신해 고통을 겪은 셈이다.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을 다른 사람이 받으면 책임이 면제된다. 이런 신의 자비로운 쇼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앞으로 더 선하게 사는 것뿐이었다.
가톨릭 전통에는 '일곱 가지 대죄'가 있다. 성서에는 그런 표현이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성서에서 비난하는 죄 중에서 일곱 가지를 모아서 이르는 말이다. 자만, 시기, 정욕, 화, 탐식, 탐욕, 게으름의 죄 일곱 가지다. 자만은 인간이 첫 번째로 지은 죄이기 때문에―아담과 이브가 신처럼 되려 한 죄―언제나 맨 처음에 위치한다.
여러 문학작품에서 죄는 인간으로 의인화된다. 존 밀턴의 서사시 『실락원』에서 '죄'는 '사탄'의 딸이며, 사탄과의 근친상간을 통해 '죽음'을 낳는다. 이 사악한 삼총사는 일종의 '반(反)삼위일체'를 형성한다. 즉 신성한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에 대항하는 악의 삼위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