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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표적과 기적이 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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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장3절4절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피조물 고백기도

 

나는 영생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사탄을 정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나는 믿음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되었습니다.나는 거룩한자입니다.

나는 모든것을 탁월하게 할수있는 은혜가 있습니다.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며 하나님의 생명과본성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영생은 나의것입니다.의는 나의것입니다.

죄를 죄거함은 나의것입니다.구원 구출 해방 자유는 나의것입니다.

치유와 신성한건강은 나의것입니다.형통은 나의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있습니다.나는 아가페 사랑을 할수있습니다.

나는 지혜가 있습니다.나는 상황을 바꾸며 항상 승리하는자입니다.

나는 내인생의 선지자입니다.나는 영혼구원자이며 킹덤빌더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사 우리를 영광스런 아버지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개혁)킹덤빌더교회목사 이상열목사 

                                                                                     

                       기독교신앙상담:이상열목사 010-3438-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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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초대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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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3:37 조회3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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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사




사도시대(70-100)에 관련된 역사는 너무나 역사적 자료가 미미하기 때문에 교회사 중 가장 희미한 시대라 말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95-98) 신약성경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70)에 쓰여졌다. 그리하여 성경에 기록된 적은 정보만이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성경 외에 자료도 희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도시대가 마무리되면서 교회역사에 과도적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기독교인들의 다음 세대가 시작되고 교회는 사도들의 직접적인 감독과 영향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독립화 되어갔으며 초대 교회적 모습에서 점점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를 가리켜 후기 사도적 교회시대라 부르고 사도들이 떠난 상황에서 직면되는 여러 문제들을 맞이하게 된다.


사도들의 사역과 죽음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사역과 죽음에 대한 전설들이 있지만 성경적 성격과는 거리가 멀게 보인다. 사도들이 말년에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 여러 가지 심각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50년 예루살렘 회의(conference) 때까지 적어도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다고 여겨진다(행 8:1; 15:6).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44년 아그립바 왕에 의해 살해당했다(행 12;1-2). 베드로, 요한, 유다, 그리고 바울을 제외하고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50년 이후에 거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초의 사도들, 즉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를 떠나 여행하며 사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먼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교훈에 따라 온 세상으로 나아갔다(마 28:19; 막 16:15); 2) 바울이 58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장로들과 모임을 가졌다고 되어있는데 사도들이 이미 예루살렘을 떠난 후라고 여겨진다(행 21:17-8). 초대 사도들, 즉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를 떠나 사역을 행하므로 영향을 끼쳤다(고전 1:12; 9:5; 벧전 1:1; 5:3; 계 1:9). 로마 카톨릭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로마 교회 감독이었는지는 문제가 되지만 로마에 들어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가 64년에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순교적 죽음을 예언하신 것을 관련시키기 때문일 것이다(요한 21:18-9). 68년 바울은 로마 밖에서 목베임을 당했다(딤후 4:6-8, 16-8). 요한은 말년에 아마 에베소에서 활동했을 것이고 자연사를 당한 유일한 분일 것이다. 나머지 사도들의 삶, 사역, 그리고 죽음은 알 수 없다.



교회의 발전
교회는 초창기에 상당한 성장을 했다. 수천 명의 유대인들은 복음이 유대 내에 전파되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행 2:41; 4:4; 6:7). 이러한 급성장은 이방국가들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행 16:5). 바울은 이방인들과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그리고 아가야(Achaia)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였다. 하지만 그 혼자만의 사역은 아니었다. 강력한 교회는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설립되어 있었고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베드로는 바울이 방문하지 않았던 지역, 즉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서신을 쓸 수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일리쿰(Illyricum, 마게도니아 북서부지역)까지 먼곳 까지 복음을 전파했고 스페인까지 갈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롬 15:19, 24). 크레타 섬(Crete, 그리스 동남부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지만 말년에 디도를 그 곳에 보내면서 각 도시에 임명된 장로들에게 지침을 주었다(딛 1:5). 또 디도를 달마티아(Dalmatia, 딤후 4:10)로 보내기도 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그는 로마에서 골로새 형제들에게 편지를 써서(61-3년경) 복음이 “하늘 아래 온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했다(골 1:23). 이와 같은 급성장은 1세기말에도 계속되었던 것이 확실한데 그 이유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복음전파에 열정이 이를 잘 반영한다. 사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95) 아시아에만도 10교회 이상 알려진 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먹구름이 서서히 지평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울이 예언한 것처럼 마지막 성경은 변절자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행 20:29; 딤후 4:1-3; 딤후 3:1-9; 4:3-4).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억압을 가하게 되었고(요3서 9-10), 1세기말에 이르러 계시록에 언급된 7교회들 중 두 교회만 영적으로 건강했을 뿐이다(계 2:3). 평범한 기독교인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거짓 교사들과 부도덕으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계 2:14-5; 20-24). 아시아 교회들의 조건들은 1세기말 모든 교회들의 전형적인 문제들을 반영했다. 요한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시작된 이단과 전투를 의미하는 듯하다. “적그리스도들”은 이미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 등장했다(요1서 2:18; 4:3; 요2서 7). 그리스도의 주요한 적들은 수년 안에 도래했다.




유대주의와 로마정부와의 관계
기독교인들과 불신 유대인들간의 관계가 처음에는 친숙했지만(행 2:47), 불신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핍박을 가했다. 이러한 핍박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마침내 교회를 향한 편협과 적대감이 유대인들이 갖게 되었다.
로마정부와 교회와의 관계는 처음에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교회는 유대주의 분파로 처음에는 로마인들에게 인식되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해 유대인들의 공격이 가해지고 독특한 교리들과 예전들이 알려지면서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독교인들은 64년 로마 시를 불태울 때까지 로마인들에게 핍박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가장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네로의 핍박은 간헐적이고 지역적이었다. 도미티안(Domitian, 81-96) 때에 이르러 로마정부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전반적 핍박이 시작했다. 이 때부터 핍박은 4세기 초 콘스탄틴 대제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해와 와전된 소문으로 인해 편협성이 일어났고 로마정부의 적대감은 본질상 정치적이었다. 신성시화는 로마황제에게 향을 피우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거부하자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우상숭배이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충성과 애국심이 다른 것으로 보였기에 그들은 그들을 반역죄로 다루었고 사형으로 다스렸다. 요한의 계시록은 기독교인들이 도미티안 핍박에 당할 고통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완성
사도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할 때, 기독교인들 가운데 나타난 이적능력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고전 13:8-10). 하지만 이와 동일한 것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약성경이었다. 신양성경은 8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요한의 저서를 제외한 모든 책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50-70년에 쓰여졌다고 확실시된다. 요한의 책들은 1세기 말에 쓰여졌다(95-98). 신약성경은 기독교인들 무오류하게, 충족하게, 그리고 불멸의 안내서이다.(딤후 3:16-17; 벧전 1:23-5).


전 니케아 시대

배교의 어두운 과정이 접어든 후 로마 카톨릭교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여기에서 보게 될 것이다. 배교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사도들의 시기에도 교회는 배교의 모습을 직면했다(행 20:29-30; 요3서 9-10). 사도들이 떠난 후 배교는 수없이 일어났다. 후기 사도적 교회 역사초기시대는 핍박으로 시작했다. 1세기말에 이르러 로마정부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 정책을 정착시켰다. 핍박은 2-3세기에 걸쳐 간헐적으로 일어났지만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발표된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끝났다. 하지만 교회를 위해 수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놀라운 발전도 있었다. 후기 사도적 교회역사 초기시대를 가리켜 “전 니케아시대”(Ante-Nicene Age)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최초의 교회 종교회의였던 니케아 종교회의 전 시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소아시아 니케아에 325년 콘스탄틴에 의해 소집되었다.

군주적 감독직 발생

처음으로 배교가 교회에 일어났던 형태는 조직화의 타락에서였다. 조직화 타락에서 일어난 처음 단계는 여러 세기동안 진보하면서 무오류 교황이라는 직책으로 변화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군주적 감독직’(monarchical episcopate)-군주적이란 의미는 ‘한 지배’(one-ruling)를 의미하고 감독직이란 ‘감독의 직책’-이라 부른다. 이런 군주적 감독직이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가능한 설명은 후기 사도적 시대에 시작했을 것으로 여긴다(행 20:29-30; 요3서 9-10). 교회 조직에 일어난 이런 변화는 2세기 첫 분기에 어디에선가 설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디옥 군주적 감독이었던 익나티우스(Ignatius, 10-117)는 소아시아 7교회들의 군주적 감독들을 언급하고 있다. 사도적 시대에 ‘장로들’(presbyters)과 ‘감독들’(bushops)은 서로 각 교회를 감독하는 남성들에 사용되었던 명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장로가 다른 장로보다 더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감독’이란 직책이 그에게 주어졌다. 2세기 초 이러한 변화가 모든 교회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군주적 감독의 권위는 지역적이었지만 160년에 이르러 군주적 감독직은 거의 우주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의 개념은 감독들이 사도들의 역할, 권위, 그리고 책임들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감독직 개념과 연관을 가지면서 위대한 능력과 신적 권능이 주어졌다. 어떤 역사가들은 강력한 감독직 발전은 이단이 발생하므로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요구된 권위를 집중하는데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지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신약성경적 표현을 볼 수 있다: “poimen pastor shepherd”(엡 4:11); “presbuteros presbyter, 장로와 나이 든 자”(행 11:30); “maturity and experience”(god 14:23; 20:17); “episkopos bishop overseer, supervisor”(빌 1:1; 행 20:28).
사도적 교회에 발전된 것과 비교하여 감독직책에 관련하여 성경은 세 가지로 결론 내린다. 먼저, “장로”(elder), “감독”(bishop), 그리고 “목회자”라는 세 용어는 모두 같은 직책을 교호적으로 사용했다(행 20:17l 28; 딛 1:5, 7; 벧전 4:11). 장로들이 목회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교회의 여러 공직자들이 교사들과 복음자들이 언급될 때 장로가 어떻게 생략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점은 같은 직책에 다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신약성경 교회는 장로가 있는 것으로 언급할 때마다 장로는 “한 장로”나 “한 목회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은 지역교회가 항상 장로들의 다수들이 있다고 한다. 주님께서 한 사람이 지역교회의 최고의 감독자로 격상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만일 지역교회에서 조차 그런 일을 원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주적이나 전체적인 지도력을 한 사람이 갖을 수 있을까? 세 번째로 한 장로의 권위가 지역교회를 넘어 영향을 끼친다는 지침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이끄는 사람들로서 성령이 그들에게 감독자로 세우셨던 것이다(행 20:28).

교회 핍박
2세기초에 이르러 교회는 시리아, 마게도니아, 그리스, 이집트, 그리고 로마 지역에 잘 설립되었지만 소아시아에 가장 활발했다. 하지만 정부적 차원의 반대를 직면했다. 교회는 이미 네로(54-68)와 도미티안(81-96) 시대에 핍박을 겪었다. 그러한 핍박들은 고대사회에 교회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로마정부는 기독교인들에게 악감을 가졌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거나 경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대한 악감은 무신론자라는 고소들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신들을 부인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이 방종하다(licentiousness)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야에 몰래 예식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식인종(cannibalism)이라 보았는데 그 이유는 성찬에 대해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배타적인 사상에 대해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핍박이 2세기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소와 핍박에 대해 ‘변증자들’(apologists)-apologia라는 그리스어는 “변증”을 의미하는데-이 일어나 로마 지도자들 앞에 복음과 교회를 철학적으로 변호하려고 노력했다.

영지적 이단들

영지주의
교회 내에 오래 지속된 교리논쟁들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관련된 질문이다. 신약성경의 뒷부분의 책들은 1세기말 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거짓된 개념들이 일기 시작했다고 가르친다. 요한서신들은 특별히 이런 맥락에서 오해된 개념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요1서 1:1-3; 2:18, 22; 4:2-3).
교회가 직면한 두 번째 교리적 위기는 영지주의(Gnosticism)였다. 영지주의의 기원과 성격은 신비에 싸여있다. 아마도 종교철학의 분야로 분류되기도 한다. 영지주의는 교회가 세상에 있기 전에 있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영지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용이치 않다는 이유 중 하나는 바벨론,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유대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이들과는 전혀 다른 종합체로 변했기 때문이다. 또 시대를 지나면서 다른 형태로 발전하고 진화되었다. 그래서 2세기 교회가 직면한 영지주의는 3세기의 것과는 자뭇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동방에서 일어났고 2-3세기 교회에 큰 도전을 주었던 것은 틀림없다. 영지주의는 135-160년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끼쳤다.
‘영지주의’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영지’(gnosis, 지식)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지만 영지주의가 변호하는 지식은 연구나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지혜를 의미했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은 ‘pleroma’라 부르는 빛의 영적 세계에서 최고의 머리이다. 이 세상의 어떤 파편들이나 빛의 씨앗들이 어둠과 악의 보이는 세계로 떨어져서 갇히게 되었다. 이렇게 갇힌 빛의 ‘광채’(sparks)는 사람 안에 거하고 빛의 영역으로 재통합되거나 회복되어야만 한다. 회복의 수단은 그리스도가 계시했던 ‘지식’으로 말미암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 단지 보이는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거나 영적 참된 실체들과 교재를 하므로 가능하다.
영지주의자들은 보이는 육체적 세계가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믿었다. 오직 ‘영’(spirit)만이 선하다. 물론 어떻게 세상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영지주의자들은 ‘영’이란 것을 사용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영’이시다면 전적으로 선하신데 어떻게 하여 그가 육체적 세상과 같은 악한 것을 창조하실 수 있었을까(How could He have created . . .)? 영지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높으신 하나님은 육체적 세상을 만드신 유일하신 분이셨다는 것을 단순히 부정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육체적 세상간에 공간을 메우는데 ‘이온들’(aeons)이나 천사들의 많은 계급에 대한 견해를 도입한다. 이온들중 가장 높은 것은 물질(matter)과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지만 사람과 육체적 세상보다 낮은 계급에 있는 물질은 전적으로 물질적이다. 하나님과 육체적 세상간에는 수많은 영적인 것(spirituality)이나 유형적인 것(corporality)의 이온들의 많은 계급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온들 중 하나가 ‘조물주’(demiurge), 즉 불완전하고 열등한 존재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세상을 창조했다. 영지주의자들을 역시 ‘조물주’를 유대인의 하나님과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동일시했다.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육체적 세상에 대한 영지주의적 견해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육체적인 것은 모두 악하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올 수 없다고 결론 맺는다. 이러한 문제는 ‘가현설’(Docetism, 그리스어 ‘dokeo’는 ‘seem’의 뜻)으로 재분류되어갔는데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실제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오직 육체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실제로 허깨비(phantom)이거나 유령과 같은 것(ghost-like apparition)으로 영지주의는 말한다(눅 24:36-43). 이러한 설명은 요한의 저서들(요1서 1:1-3; 4:2-3; 2서 7)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설명을 강조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세례를 받을 때 인간 예수님으로 오셨고 인간 가운데 거하셨다고 믿었다(요1서 2:18, 22).

영지주의자들의 윤리는 이러한 주장에 영향을 받아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아갔다.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학대를 받아야만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고행(ascetism)으로 육체를 학대한다. 다시 말하면, 육체에 필요한 육체적 안위조차도 자기 부정한다(딤전 4:1-5; 골 2:20-23).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와 영이 완전히 구분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각 실체들은 다른 길을 걸어야만 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설명으로 인해 육체의 방종(indulgence)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신약성경 저자들에 의해 날카롭게 공격을 받았다(딤후 3:1-7; 벧후 2:1-2, 12-19; 요1서 3:4-10; 유 4, 8, 16; 계 2:14-15, 20-24).

말키오니즘
말키온(Marcion)은 소아시아 출신으로 139년 로마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영지주의를 전파했고 마침내 144년 출교를 당했다. 말키온의 영지주의는 전적으로 반 유대적이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사악하고 잔혹했다. 그리스도는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계시했다. 바울은 복음을 신실하게 이해했던 유일한 사도였다. 다른 사도들은 모두 유대주의 사상에 젖혀있었다. 구약성경과 그 하나님은 전적으로 부인되었다. 고행적 삶은 따르는 자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말키온은 분파를 조성하고 성문서들의 정경화를 시도했다. 그가 말하는 정경은 바울의 10서신들과 누가복음이며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부친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모든 구절들을 삭제했다. 말키온의 추종자들은 5세기까지 살아남았다.

몬타니즘
몬타니즘(Montanism)은 영지주의의 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말키온 시대 이후에 나타났으며 소아시아 출신 몬타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교회 내에서 사라졌고 세속화가 점점 만연해갔다. 결과적으로 몬타누스는 156년에 일어나 자신이 성령의 도구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보내신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주장했다(요 15:26). 과도한 예언을 주장하는 몬타누스는 세상의 임박한 종말, 성령의 시대의 종말을 예언하면서 하늘의 예루살렘이 프리기아(Phrygia)에 세워질 것이기 때문에 고행만이 이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소아시아 감독들은 종교회의 개최하여 몬타니즘을 정죄했지만 교회 내에 만연했던 세속화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고 그 운동은 몬타누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수년동안 계속되었다.

카톨릭교회

‘교회’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두 가지 기본적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므로 구원받은 온 세상 사람들의 총체(aggregate)”를 의미한다(마 16:18; 행 2:47; 엡 1:22). 다른 하나는 “예배와 영적 사역의 목적을 위해 함께 지리적인 영역에 특별한 모임을 갖는 사람들”을 말한다(롬 16:16; 고전 1:2; 계 1:4, 11). 그래서 교회는 ‘우주적’이고 ‘지역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여 교회가 ‘카톨릭’이 될 수 있을까? 교회의 ‘단일성’(oneness)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의 몸이라는 요소는 공통적인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의 단일성이라할 때 본질상 ‘교리적(doctrinal)’이다. 우주적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각 성도는 우주적 교회의 한 일원이며 다른 일원들과 관계를 가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우주적 교회의 구성인은 기독교인 각자들이지 지역 회중이 아니다(고전 12:27).
사람들은 2세기의 사람들처럼 이러한 개념들을 망각하기 쉽다. 먼저 사람들은 우주적 교회의 개념을 개인적 기독교인들보다 다양한 지역적 회중들로 구성하는 것처럼 가진다. 형제의식은 지역교회들(church-hood)의 연합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역 회중들에 대한 개념을 집합적인 활동(collective work)이라 여기기 쉽다. 이런 개념으로 나아가면, 교회의 일원들과 지역 회중들은 스스로 공통적 신앙과 관계를 가졌다기 보다 서로 조직적 연합체로 인식하게 된다. 기원적 단일성과 연합적 활동은 회중 내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서로의 협력을 전재한다. 2세기 군주적 감독들은 회중 내적 지도자들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회는 공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감독들의 권위를 전제하는 기독교인들의 유기적 단일체로 인해 ‘카톨릭’이 되었다. 영지주의적 그리고 몬타니스트적 위가로 인해 교회는 ‘카톨릭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단자들과 분파자들(schismatics)에 대해 교회는 참 교회와 신앙을 정의하고 스스로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역 교회들은 회중 내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 것이다.

‘카톨릭’교회의 발전과 특성
1. ‘보이는 교회’와 ‘보이는 계승’--참 교회가 사회적으로 그 정체성이 명시될 수도 있고 교회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계열들이 역사 속에 더듬을 수도 있다. 참 교회가 항상 일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도 된다. 단순히 ‘종파’(sect)는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개념은 성경을 축소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가르치며(요 17:17) 교회에서 일어났다(눅 8:11). 교회가 진리라는 카톨릭 교회 개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면 진리는 교회가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2. 교회만이 성경의 해석하고, 성경의 보고며, 소유자이다--이러한 개념은 위의 개념에서 계속해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교회가 항상 참 교회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질 것이다. 그리하여 각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지 말아야 하고 단순히 교회가 말하는 성경 말씀만을 순응해야만 한다.
3. 감독 권위의 확장-군주적 감독들, 즉 특별히 사도시대동안 설립된 사도적 교회들의 감독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들로 여겼다. 영지주의자들이 전해 받은 비밀적 구전들을 사도들로부터 받았다는 영지주의적 주장에 대해 리용의 감독 이레니우스(Irenaeus, c. 142-200)는 사도적 가르침은 사도적 터전 위에 세워진 교회들에 온전히 보존되었거나 아니면 그들의 감독들에게 맡겨졌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것이지 구전으로 감독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또 사도들의 교리들과 권위들이 감독들에게 영속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감독들이 정의내리는 신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단자들이고 분파자들이었다. 믿음을 정의내리는 감독들의 권위에 일치하지 않으면 출교를 당하게 되었다.

로마교회의 발생
1. ‘사도적’교회--바울이 두 번이나 나타났기 때문에 로마가 다른 감독지역보다 우위에 있다. 베드로가 말년에 로마교회 감독으로 사역했다고 믿는다.
2. 제국의 수도--로마교회의 우위성은 로마제국의 정치적 활동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3. 동방교회들의 축소--에베소, 안디옥, 그리고 예루살렘과 같은 동방교회들이 소아시아 유대인-로마 전쟁과 몬타니스트 갈등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동방교회들의 공백을 로마 교회가 메웠다. 200년에 이르러 로마는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었다. 로마의 성장하는 권력은 부활절 논쟁에 잘 반영되었다. 그 논쟁은 너무나 격렬했기 때문에 종교회의들(synods)은 그 문제에 대해 로마와 팔레스타인에서 개최되었다. 이런 종교회의들은 로마예전을 따르기로 했고 소아시아 교회들이 따르기를 거부하자 로마의 감독 빅토르(Vinctor, 189-198)는 그들을 출교내렸다.

단일신론

기독교인들의 논쟁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격, 본성, 그리고 사역과 관련된 논쟁만큼 오래 동안, 잔혹하게, 해결되지 않은채 진행된 것은 일찍이 없었다. 이러한 논쟁들은 기독론(Christology)으로 알려진 신학으로 발전해 갔다.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것으로 삼위일체론 안에 성부와 성령과의 관계를 말한다. 다양한 기독론적 견해는 수세기 동안 채택되고 변호되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그리스도의 인격, 본성, 그리고 사역에 대한 개념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들에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하고 그 확신 속에 거해야만 한다.

세 가지 기독론
1. 로고스 기독론--‘로고스’(logos)라는 헬라어는 말씀으로 번역되는데 하나님을 육체 모양으로 나타내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데 요한이 사용한 단어이다(요 1:1, 14; 요1서 1; 계 19:13). ‘로고스’ 기독론은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이시라는 주장이다. 성부와 성령이 성부로부터 발산되기 때문에 그들은 성부에게 종속해 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본성, 즉 인성과 신성을 가지셨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성육신하기 전, 동안, 그리고 후에 신성으로 존재하셨다. 터툴리안(Tertullian, c. 150-225)은 이 견해의 참피온이기 전에 190-195에 개종한 카탈지(Cathargian) 출신 법률가였다. 약 200년에 카톨릭 교회를 떠나 몬타니즘으로 수용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교회 학자였기에 ‘라틴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2.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기독교 개념을 공격한 영지주의는 이 주제에 연구적 관심을 갖도록 자극시켰다. 공통적 신자들은 삼위일체와 다신론의 개념간의 구분을 쉽게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대신 단일신론이나 유일신론(unitarianism)을 통해 이해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을 주장한다. 단인신론자들은 또 두 분파가 있는데 역동적 단일신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양자가 되셨다는 것이다. 세례 시 그리스도나 성령, 아니면 다른 신적 권능이 그에게 임했다. 어떤 역동적 단일신론자들은 예수님에게 신적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시 신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3. 양식론적 단인신론-두 번째 단일신론자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세 가지 형태로 자신을 명시하셨다(manifestinated)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지 일시적 명시일 뿐이다. 3세기 초 로마에서 이런 사상을 가르쳤던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 하나이며 같은 분이라는 것이다.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은 3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명시한 이름들에 불과하다. 성부는 구약성경의 율법수여자이고, 성자는 성육신 하신 자이고, 그리고 성령은 사도들에게 영감을 주는 자이다. 사벨리우스는 로마에서 출교를 받았지만 북 아프리카와 동방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많은 논쟁이 있은 후 서방교회는 로고스 기독론을 정통으로 인정했지만 동방교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상이한 현상을 나타내었다. 기독론 논쟁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하도록 황제 콘스탄틴을 부추겼다.

성직자들의 성장

종교적 헌신자들은 전문적이고 평범한 일원들간에 구분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기독계에서 성직자/평신도의 구별을 의미를 말한다. ‘성직자’(clergy)는 그리스어 kleros (“lot”)라는 말로서 한 직분을 갖기 위해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무엇을 제비를 뽑는다는 어원에서 나왔지만 공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하다가 공직을 소유하는 자(office-holder)를 의미하게 되었다. 평신도(laity)는 그리스어 laos라는 말로서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성직자는 특별히 엘리트 계급을 일컫는 말로서 평신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해 선출되고, 훈련받고, 후원받는 사람들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 이유는 두 부류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먼저 유대적이고 이교적 예전들의 경쟁 때문이다.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이 되면서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사제적 지위(castes)를 가졌다. 자신들의 위치를 격상시키기 위해 점점 카톨릭 교회의 구조에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로는 위임적 종교(proxy religion)에 대한 욕망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부족함을 느끼는 자들이 인간적 도움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개인적 종교적 책임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서 특별한 사람들이 해 주기를 바랬다. 세 번째로 전문적인 ‘교회 매니저’(church manager)와 어떤 권위적 표상을 원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의무들을 대신 처리하는 자들이 필요했다. 평신도를 위해 규율들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신앙을 정의하고 이단자들을 규명하는 사람이 요구되었다. 무엇을 행해야하는지 알리는 사람, 신앙을 변호하는 지도자가 요구되었다. 또 좋은 기강을 유지하고 조직체를 매니저하는 사람이 요구되었다. 네 번째로 인간적 자부심과 탐욕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성취욕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체들은 계급제도를 갖고 있어 성취자들에게 주어진 특권, 영광, 그리고 인정한다. 교회 내부에서도 의롭거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인준을 받고자하는 세속적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성취자들 보다 우위에 점유하려는 욕망은 평신도가 바라는 ‘위임적 종교’와 결합되어 성직자 평신도 구분을 만들었다. 더욱이 머지않아 성직은 탐욕적이고 특권적이 되고 말았다.

성직자 평신도의 개념

공직적 수임(official ordination)-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그 어떠한 공직적, 공적 진행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상기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딤전 3; 딛 1)은 일원들의 감독자들인 복음전파자들에 의해 임명받았다(행 14:23; 20:28; 딛 1:5). 아마 그 형식은 아마도 공직을 임명하는데 가시적인 인준이었던 안수였을 것이다(딤전 5:22). 하지만 성직들은 보다 특권적이고 특수했기 때문에 공직적 임명들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복음전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맡길 수 없었다. 감독들은 다른 회중 일원들의 감독들에 의해 지명되고 인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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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나는 아가페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2.성령님과 동행하는 나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13.나는 아가페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4.내안에는 믿음이 있고 나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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