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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표적과 기적이 있는교회

믿음과 사랑의교회     영혼구원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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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장3절4절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피조물 고백기도

 

나는 영생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사탄을 정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나는 믿음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되었습니다.나는 거룩한자입니다.

나는 모든것을 탁월하게 할수있는 은혜가 있습니다.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며 하나님의 생명과본성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영생은 나의것입니다.의는 나의것입니다.

죄를 죄거함은 나의것입니다.구원 구출 해방 자유는 나의것입니다.

치유와 신성한건강은 나의것입니다.형통은 나의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있습니다.나는 아가페 사랑을 할수있습니다.

나는 지혜가 있습니다.나는 상황을 바꾸며 항상 승리하는자입니다.

나는 내인생의 선지자입니다.나는 영혼구원자이며 킹덤빌더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사 우리를 영광스런 아버지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개혁)킹덤빌더교회목사 이상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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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영성과 목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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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3:32 조회313회 댓글0건

본문

그러므로, 은사의 화살은 사명과 교역을 향해 있어서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사명과 교역을 발견하여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할 때에만 평안을 얻게 하며, 사명과 교역의 화살은 은사를 향해 있어서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말씀과 기도 나누는 가운데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은사의 체험을 하므로써 성령의 능력으로 교역하도록 밀어냄을 받는다. 즉 은사를 향한 교역의 움직임과 교역을 항한 은사의 움직임에서만이 온전한 신앙공동체의 사명은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성서적인 은사의 재이해를 통하여 첫째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수직적으로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공동체를 향한 수평적인 교역에서만 의의가 있음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모든 수평적인 봉사와 교역은 수직적으로 베푸시는 성령의 선물이 없이는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과 공동체의 덕을 세울 수 없음을 인식하여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교역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세째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성령의 선물을 받고 있는 자들이며 모두 Pneumatikos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의 선물을 반드시 교역이라는 교회 공동체의 장에서 구체화 시켜야 하며 이 때에 비로서 전 교인은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온 교회가 교역에 동참하여 각 지체의 사명과 교역을 감당케 될 것이다. 이 때에라야 한국교회의 교역은 온전한 모습으로 갱신될 것이라고 믿는다.



영성과 목회


헨리 나우엔(Henri J. M. Nouwen)은 영성과 교역을 간명하게 구별지으면서 이 양자의 상호 연계성을 밝히고 있다:

교역은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교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갇힌 자에게 자유를, 소경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요, 주님의 은혜의 해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눅4:18). 영성은 우리 안에 게신 성령께 관심을 집중시키며,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영성은 우리를 광야 사막과 산 위로 보내어 기도하게 하는 것이요,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열고 주님 앞에서는 것이요,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명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영성과 교역을 분리시키고, 기도에서 봉사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 그러나 기도와 봉사는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영성과 교역은 중국의 음양설의 음과 양과 같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양면이라고 할 것이다(Nouwen,1977).

영성과 교역은 본래 하나이다. 영성이 따로 있고 교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받은 자들(영성의 사람)은 자연적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이 명하시는 사명의 수행을 위해(교역)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섬기는 이 과정은 하나의 연속과정이요 어느 지점까지를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머지 지점을 교역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는 것에 강조점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영성이라고 부르고,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강조점을 둘 때에 우리는 그것을 교역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영성과 교역은 함께 이야기해야 하며 이 양자를 분리시키는 것은 실천적으로 오래 위에 집을 세우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영성과 목회가 어떻게 하나 안에서 둘이 되고 둘이 하나로 통합되는가를 보기로 하자.
헨리 나우엔의 이러한 간명한 정의는 교역과 영성이 본래부터 분리된 두개의 영역으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양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의 삶의 양면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태복음 9장 35-36절은 예수님의 삶의 양면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35절 말씀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3년간 공생애의 교역(ministry)전반을 요약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시며, 그들을 교육시키며,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며, 모든 약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을 고쳐 건강하게 만드셨다.
오늘날에 와서 수많은 교역의 분화가 일어났지만 근본적으로 교역의 근본 모델은 바로 위의 구절에 요약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교역은 어디에서 동기가 부여되고 있는가? 피곤과 고용과 심지어 죽음의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모든 성과 촌에 두루다시니면서 교역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났는가? 마태복음 9장 36절은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의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사람들 -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시고 그들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있으며, 그들을 돌보아 주고자 하는 관심으로 가득차 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저 고난당하는 양무리로 가득하여 그는 그들을 돌보기 위하여 스스로 고난의 자리에 서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가페라는 용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태복음 9:35-36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의 교역(35절)과 예수님의 아가페(36절)는 바로 예수님의 삶의 양면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교역은 그의 아가페에서 동기를 부여 받고 있으며, 예수님의 아가페는 교역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35절은 예수님이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느냐(아가페의 사람)가 예수님이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예수님의 교역)을 결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의 삶이 영성과 교역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삶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와 그분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Christian ministry)의 근본적인 관계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오늘 우리시대의 교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무엇을 하시고 싶어하는가」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에는 지나치게 소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는가?」(기독교 영성)와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기독교 교역)는 하나의 삶의 양면이다. 기독교 교역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있어야 한다. 환언하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아가페를 가지고 교역 현장에서 하나님의 교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독교 영성과 기독교 교역을 교역자의 하나의 삶의 양면을 의미하며, 이 중 어느 한면의 약화는 다른 한면의 약화를 가져오며, 동시에 어느 다른면의 강화는 전체 삶의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영 ․영성 ․교역의 상호관계
기독교 영성이란 말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기독교 교역(Christian ministry) 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조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교역이 우리의 「할인」에 관심을 둔다면 영성은 우리의 「사람됨」에 관심을 갖는다. 교역이 봉사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영성은 하나님과의 사귐(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영성과 교역의 관계성을 바로 인식하기 위하여 먼저 영과 영성과 교역의 근본성격을 먼저 고찰하고저 한다.

1) 영(Spirit)

⑴ 히브리 - 헬라의 영 개념
영을 지칭하는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의 루아흐와 헬라어의 프뉴마는 다 같이 호흡과 바람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단어가 지칭하는 개념에서 보면 히브리어의 루아흐와 헬라어의 프뉴마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 인간론에서 루아흐는 사람에게 생기와 활기를 불어 넣는 힘이다. 루아흐가 그 사람에게서 나가면 그 사람에게서 생명이 떠나 버린다. 이런 점에서 히브리 인간관은 오늘의 과학적인 인간관과는 다르다. 성경의 창조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숨을 불어 넣자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불어 놓은 루아흐에 의해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 창세기 1:2에서 하나님의 루아흐는 공허와 혼돈과 흑암의 수면에 운행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구절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단절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초월하신 창조주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창조주에게 응답할 수 있으며, 창조주의 사람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히브리 인간관에서 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시사하고 있는 인간 생명이중대한 차원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의 프뉴마는 바람과 호흡과 에너지를 의미하는 다이내믹한 실재이지만, 육체에 대응하는 실재로서 영을 이야기하고 있다. 헬라어의 프뉴마는 신플라톤주의를 따르는 영지주의자들에게서 완전히 그 개념이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영은 영원하며, 이상적이며, 참 실재의 영역과 동일시 하게 되었다. 이에 대조해서 육체는 부패하고 썩어질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영과 육체의 이원론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헬라어의 퓨뉴마의 개념에서도 인간의 영은 초월적인 실재와 접촉할 수 있으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히브리어의 루아흐와 헬라어의 프뉴마는 같을 뜻을 가지고 있으나 그 개념상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영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초월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초월을 경험하며, 초월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의 생명의 차원을 대변하고 있다는데서 히브리어의 루아흐와 헬라어의 프뉴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헬라의 영의 개념은 인간은 단독자로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간은 자기의 몸과 정신을 개발하여 완벽한 인간이 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신과의 관계가 단절된다고 하면 참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초월하신 신과의 관계안에서만 진정한 인간의 가치와 의미와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헬라의 영 개념은 바로 이것을 암시하고 있다.

⑵ 현대의 세가지 영개념
오늘날 초월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적인 인간관에 따르면 영은 단순히 수평적인 가치에 응답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신의 부름에 응답하고, 아름다움에 감격하며 미를 창조하며, 대적자들을 견디어내며, 자유로운 선택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들을 영의 개념 속에 포괄하고 있다. 예컨대 자아 심리학(ego psychology)에서는 강력한 집중력을 갖고 있어서 삶의 상황 가운데서 부딪쳐 오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합하여자기를 확고하게 정립해 나가는 자아를 지칭해서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영은 좀 더 강하고 좀 더 높은 어떤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Erikson 1963:23-25, Sutich, 1969).
그러나 이와 같은 과학적이요 수평적인 영의 개념은 오늘에 와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히브리-헬라적인 개념에 가까운 영의 개념이 개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영은 탄생, 죽음, 고난, 기쁨, 아름다움, 자연, 비극등의 인간경험에 응답하고 성찰하면서 그곳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인간의 피조성을 초월하는 힘과 의미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또는 기능이다. 즉 영은 초월적인 의미에 응답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영적인 성장이니, 은혜로 양육한다는 말은 곧 초월하신 하나님에게 응답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깊게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월을 깨닫고, 이해하며, 초월의 삶에 점점 깊이 참여하는 삶의 곧 영적 성숙의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Thayer, 1985;46-49).
세 번째 영의 개념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갈망하는 인간의 속성을 지칭한다.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나를 만드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우리의 심령은 안식을 얻을 수 없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갈망은 바로 인간이 자신보다 더 큰 힘과 의미의 근원(초월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삶에 참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의 표현이다. 인간의 종교역사는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이러한 갈망이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 가운데 하나였다고 예증하고 있다.초기에 있어서 이것은 의미와 힘을 제공하는 초월적인 실재에 참여하려는 욕구로 표현되었으나 차츰 초월적인 실재와 관계를 연합하려는 갈망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은 궁극적인 실재와 하나로 연합을 경험하고저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May, 1982, Ware, 1971:33, Jung, 1939:4).
위에서 우리는 히브리- 헬라적인 영의 개념과 오늘 우리시대의 세가지 영의 개념을 일별하였다. 그 가운데 과학적인 세계관에서 근거한 영의 개념 하나를 제외하고는 한가지 점에서 공통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영이 자기를 초월하는 실재와의 관계를 추구하는 인간 존재의 차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이요, 초월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인간의 기능이요, 초월적인 존재의 참여하며 관계를 맺으며, 드디어 초월자와의 연합(union)을 경험하고저 하는 갈망을 생산하는 인간의 중심이다. 디모데 웨어(Tismothy Ware)는 이러한 영의 개념을 종합하면서 “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 속에 심어 놓은 것으로, 이 영이 있으므로 이간은 하나님의 성령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Ware, 1971:21).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영의 개념을 한마디로 요약하며, 초월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갈망하며, 경험하며 관계를 맺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생명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영성(Spirituality)
영성(Spirituality)의 정의는 매우 다양하여 어느 하나를 대표적인 정의로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영성의 정의를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어반 홈즈(Urban T. Holmes)의 저서 Spirituality and Ministry 일 것이다. 그는 다섯 가지 요소로 된 영성의 정의를 소개하고 있다.
① 영성은 인간의 관계의 능력이다.
② 그 관계는 그 감각의 현상세계를 초월하는 실재와의 관계이다.
③ 초월적인 존재의 경험자는 주체적인 노력에 관계없이 관계를 통해서 의식의 확장 또는 고양을 얻게 될 것이다.
④ 이 관계는 역사적인 환경에서 그 본질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⑤ 이 관계는 이 세상에서 창조적인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홈즈의 정의는 「초월적인 실재와 인간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홈즈는 인간에게는 초월적인 실재와 관계를 맺으려는 본성적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가 이 세상의 감각적 실재속으로 침투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성령과 만나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 진정한 영적 성숙이 일어난다고 강조한다(Holmes, ibid, 11-19). 홈즈가 영성의 관계성을 강조한 반면에 노만 샤유척(Norman Shawchuck)은 이 관계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영성의 정의를 삼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기독교 영성은 주 예수님과의 관계의 삶이다.
② 이 관계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적인 실재이다.
③ 이 관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요 대가로 주는 보상이 아니다(Shawchuck, 1983:1-2). 샤유척은 이 삼요소의 핵심을 “선물로 받은 관계”(gifted relationship)에 두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기 전에 우리에게 찾아와서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 줄까?” 를 물으시는 분이시다. 실재로 인간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기를 원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그 관계를 발견하고 그 관계속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 분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와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고치신다.그러므로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하나님이 사랑 가운데서 이니시어티브를 가지고 인간을 찾아와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이러한 샤유척의 영성의 정의는 홈즈의 정의와 상호보완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홈즈는 초월적인 실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영성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러한 본성적 욕구가 초월적 실재와의 관계를 맺으므로 영성이 개발된다는 인간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 반면에 샤유척은 그러한 욕구를 갖고 있으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관계를 맺어 인간을 새롭게 고쳐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홈즈와 샤유척은 반대의 방향에서 영성에 접근하고 있다.그러나 출발점과 강조점은 서로 다른 반면에 그들이 가리키고 있는 영성의 실재는 같은 것이다. 즉 그들은 모두 영성이 「초월적인 실재인 하나님의 성령과의 관계성」이라는 데에 일치하고 있다. 존 유스텐과 웨스터 호프(John Eusden and John Weterhoff)는 영성의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핵심에는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 육체와 영혼, 세속과 성스러움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 영성은 이러한 통합이 완전하게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이르는 것이다.우리 인간은 육체적인 몸과 지성 이상의 존재이며, 감각적인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세계보다 더 큰 세계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만남과 참여의 직접적인 방법으로 초월적인 실재의 차원을 깨달을 수 있다(1982:2).

유스텐과 웨스터호프는 영성의 개념 가운데서 통합의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통합(integration)은 인간존재의 현상세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차원과 초월적인 실재의 차원까지를 끊임없이 하나로 통합하여 삶의 폭을 넓혀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다. 즉 유스텐과 웨스터호프는 초월적인 실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로 통합하여 보다 폭이 넓고, 보다 건전한 인간의 삶의 질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영성을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홈즈의 정의 ④번과 ⑤ 번 가운데서 이미 언급하고 있는 요소이지만 유스텐과 웨스터호프는 이점을 초점을 맞춰 초월과의 관계가 어떻게 인간을 폭넓게 변화시키는가를 규명하려고 하고있다.
김경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그리스도인의 성화 과정등을 영성과 연관지으면서도 영성의 사회성에 더 큰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의 영성의 정의는 사변적이요, 기독교 영성과 영성의 일반적인 의미를 명백히 구별짓지 못한 감은 없지 않으나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장황한 영성의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성은 지정의를 통합 총괄하는 인간존재의 본바탕이요, 인간성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며, 마음이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하나님과의 교류․합일․동역을 체험하는 영혼의 핵이요, 영성훈련은 본질적으로 성화의 과정이며, 영성은 인간이 독거하는 독백이 아니라 삶의 현실과 역사현실을 포괄하여야 하며 영성의 사회적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김경재, 1985:218)

김경재는 이 정의에서 영성은 초월자와의 관계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의 삶의 현장소고에서 그 결과가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 소개한 영서의 개념들을 기독교 신학의 빛 가운데서 종합한다면, 다음의 몇가지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속에 불어 놓어준 인간의 영의 갈망에서 출발한다.
② 하나님께서 성령을 인간의 피조세계 속에 보내어인간을 찾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속에서만 기독교 영성은 가능하다.
③ 기독교 영성은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만나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④ 인간이 하나님의 성령과 관계를 맺고 교제하며 살 때에 인간은 새로운 의식 의미와 힘을 얻게 된다.
⑤ 그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삶을 이 세상 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기독교 영성이, 인간의 영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교역을 이 땅위에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중간 개념임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은 「자기를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이요, 초월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인간의 기능이요, 초월적인 존재에 참여하여,관계를 맺으며, 드디어 초월자와 연합을 경험하고 하는 갈망을 생산하는 인간의 중심」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교역은 구체적이 역사현장에서 하나님의 삶을 구체화 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실천해 나가는 그리스도이의 봉사이다. 그런데 영성은 초월을 추구하는 인간의 영이 어떻게 초월하신 하나님의 성령과 만나 그 분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궁극적인 의미와 힘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교역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영성훈련을 통하여 영성의 깊이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논의의 마지막 종착지인 하나님의 교역에 관해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3) 기독교 교역(Christian Ministry)
토마스 오덴은 그의 저서 「목회신학」에서 기독교교역의 핵심을 갈파하고 있다:

목사의 모든 다양한 활동은 하나의 중심,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집중된다. 목회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르치며 교역의 하나 하나의 기능을 이 중심과 연관시켜 수행하려고 한다. 모든 교역의 핵심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수행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사역이지만, 그 사역은 우리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가 수행하는 일을 통하여, 그리고 은밀하게는 우리의 육체적인 현존(bodily persence)을 통하여 불완전하게나마 구체화된다(Oden, 1987:30).

여기에서 오덴이 주장하고 있는 기독교 교역의 핵심은
① 모든 교역활동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에 집중된다.
② 모든 교역활동은 하나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라는 구심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③ 기독교 교역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④ 그러나 기독교 교역은 그리스도인들의 사역과 언어와 육체적인 현존을 통하여 구체화되어 간다. 토마스 오덴은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목사의 모든 역할, 사명, 의무, 사역은 이러한 구심점에 의하여 일관성 있게 감당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덴은 다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교역은 반드시 필요한가?」하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교회를 세상에 세우기로 작정하시고(타락한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기 위하여)교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일정한 수단들을 제공하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는 교역이 부수적인 필연성을 가졌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ibid. 50). 그렇기 때문에 교역은 “하나님이 그 수단들을 제공해 주시는 한도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된다고 강조한다(ibid.51).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갖고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역을 계획하셨고 그 교역을 실천할 수 있게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교역에 필요한 수단들을 제공하여 그리스도의 교역에 동참하게 하시지만, 인간은 그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왜고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를 타락시킨 바 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교역의 근본의미를 망각하고 남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에 구심점을 둔 그리스도의 교역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성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전에는 불가능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다니엘 D.윌리암스(Daniel D. Williams)도 이점에서 오덴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기독교 교역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교역은 모든 교역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관한 지식과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Williams,1961:43). 윌리암스의 교역의 정의 몇가지 근본적인 암시점이 있다.
① 그리스도인들이 교역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② 기독교 교역은 인간적인 동기에서 출발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아가페에서 출발해야 한다.
③ 하나님께 먼저 구원을 받고 지속적인 관계속에 사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다.
④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충분한 교역의 기술의 준비가 필요하다.
윌리암스는 교역자의 권위를 논하면서, 목회는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사람들을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역자의 권위는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 자신의 삶에 충실히 따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Ibid.제2장).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것이었다면, 교역자는 구체적인 교역현장에서 예수님의 삶을 재현할 때에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즉 윌리암스에서 교역자의 권위는 교역자의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윌리암스의 교역론에서도 분명히 암시되고 있는 점은 교역은 교역자의 그리스도에의 충실성, 즉 교역자와 그리스도의 성령과의 관계의 깊이 즉 영성의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넬슨 타이어는 「영성과 목회」에서 기독교 교역의 연계성을 다른 각도에서 예시하고 있다. 타이어는 종교자체를 “인간을 궁극적인 상황에 연관시키는 일련의 상징적인 형태와 실천”이라는 로버트 벨라의 정의를 수용하면서, 종교를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 세계를 초월하고 지탱하면서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감각세계 속으로 들어오시는 초월적인 실재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규정한다(Thayer, 1985:61). 환언하면 종교는 초월적인 실재와의 만남과 사귐을 갈망하는 인간의 영을 위하여 초월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주고(상징적 표현에 의하여), 초월과 만날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하며, 초월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을 때에 그들의 일상의 삶을 재구성하여 초월과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의미를 중심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지도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전통은 인간 이해에 대한 다음의 세가지 기본적인 가정을 지니고 있다.
① 인간은 본래 궁극적인(초월적인) 실재와 연합하고 있었다(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었다).
② 인간은 궁극적인 (초월적인)실재와 분리되었다.
③ 그러므로 인간은 그 궁극적인(초월적인)실재와 화해를 성취하고 재결합하여 궁극적인 실재의 삶에 참여하려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영적인 욕구가 인간의 욕구중에 가장 강한 욕망이다. 종교는 바로 강력한 인간의 영적 욕구에 응답하여 상징구조를 제시하고 초월적인 실재와의 화해와 연합과 참여를 추구하고 있다.
타이어는 목회의 최우선의 기능은 사람들을 격려하여 성경의 하나님의 성령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며, 성령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살게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기들의 삶을 재구성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Ibid.;64). 그는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영성개발과 목회의 중심적 사명과는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교역자가 교회와 교인들을 인도하여 영적인 삶을 발견하고, 영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목회의 중심 사명이라고 한다면 교역자 자신이 영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즉 교역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삶을 성찰하면서 인간의 역사속에 침투해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고독(solitude)과 공동체(community)와 사회참여(socialaction)속에 현존하시는 성령 앞에 서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이것이 교역자의 삶의 스타일이 되었을 때에 교역자는 교역의 근본적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토마스 오덴과 다니엘 테이 윌리암스와 넬슨 타이어의 기독교 교역의 이해를 고찰해 보았다. 오덴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라는 교역의 구심점을 강조하였고, 윌리암스는 「그리스도에의 충실성」이 교역자의 교역의 권위를 대변한다는 점을 보았다. 타이어는 인간의 가장 심원한 영적인 욕구가 초월과의 관계속에 사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교역의 중심은 바로 이러한 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영성을 개발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이 3자의 강조점은 각기 다르다고 할지라도 몇가지 점에서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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