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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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8:28 조회241회 댓글0건본문
존 웨슬리-3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기원과 본성, 운명, 존재, 의의, 가치, 사명, 죄와 악 등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합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선행은총 하에 다시
다시 그 형상이 회복되는 구원론적 인간론을 전개합니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암흑상태의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의 쾌락을 탐하며 살고, 날마다 죄를 짓기에 죄의 종이며,
법에 매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도 없습니다.
이들은 죄와 싸우기는 하나 죄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찬 빛을 보고,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죄를 범하지 않고 죄와 싸워 이깁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과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창 1/26)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지닌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사랑 자비, 정의, 진리, 성결의 품성을 지니게 됩니다.
또한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목적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브를 유혹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욕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그 성품과 영혼이 완전히 부패하였으며, 그 생각과 계획이 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이는 하나님의 형상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죄를 자각할 때 구원이 시작된다고 보고,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청중이 죄인이란 것을 자각시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습니다.
죄와 악덕을 낳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로 말미암아 영과 육의 죽음이 들어 왔으며, 그 죽음은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로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범죄 중 내적인 죄는 하나님 이외의 것을 사랑하고 피조물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영혼을 어둡게 해
신앙을 져버리게 하고 외적인 죄로 노출됩니다.
이런 자연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죄의 삯인 사망 선고를 받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복음의 출발점은 인간이 죄인으로서 자기의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대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구원 사역에 복종하게 될 때 아담으로 인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거듭남과
성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공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새로운 관계는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사랑으로 회복됩니다.
웨슬리는 인간을 선행은총에 근거를 두고 아담 안에서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중심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초대 교회사에서는 주로 예수님의 삼위일체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영국 교회의 '39개조 종교강령'과 기독교 정통주의의 기독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연관 짓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신학은 구원론이 중심인데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히 알고 믿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매 순간마다 주를 의지하고, 교류하며, 그리스도를 중심할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되기 위해선 신성과 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국 교회 종교 강령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영원 전부터 계신 말씀으로,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이며
나뉠 수 없는 신성과 인성을 소유해, 인간과 같이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희생했음을 명시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복수성을 띤다고 보았습니다.(시벨리우스 배격)
인간 구원 차원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중보자로서 강조되고, 예수님의 인성은 예수님의
구속자와 성화모델로서 강조됩니다.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중보의 역할을
담당하시는 대 제사장입니다.
화해는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죄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씻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속죄론의 중점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치루시고 죄를 사하셨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속죄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한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스도의 속죄는 천하 만민에게 갚 없이 주어지는 순수한 은혜입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구원 받거나 유기될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을
배격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재해 주시고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의 의무는 희생제사와 중재인데 예수님은 속죄와 화해의 사역을 스스로 담당하심으로써 신약시대
유일한 하늘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골 1/14, 롬 8/34, 히 4/14)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에 모범을 보여주시고 많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제시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품었던 마음을 나도 품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나도 행하는 것을 성결의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웨슬리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문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경의 삶입니다.
그는 인간은 거듭난 이 후에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인간의 구속과 관계되고, 구속의 완성은 성결로 이루어집니다.
그의 구원론은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순간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결국 모든 죄성이 사라져 사랑으로
충만해져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웨슬리의 구원에 대하 이해로부터 은총, 의인, 중생, 성화의 교리가 성립됩니다.
⑥성결(그리스도인의 완전) ⑦영화로 구분하여 구원론을 전개했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크게 '의인'과 '성화'의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단원에서는 그 중 전반기의 '의인'과 '중생'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웨슬리는 원죄를 인간의 교만과 자기 우상(self-idolaty)에서 기인하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원죄 아래 있는 인간은 저주 아래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무 조건 없는 은혜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선행 은총'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 받기를 원하면서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5/40)
인간은 하나님의 선행 은총을 거부할 자유의지가 있으며, 빛으로 나와 자기 행위가 들어날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나의 죄가 전가되고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됩니다.
'의인'은 나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의한 은혜에 의해 주어집니다.
이 과정 중에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그의 공로에 대한 믿음,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요구됩니다.
의인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값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에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한 의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인류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예수님 한 사람으로 인해 의와 생명이 들어왔습니다.(고전 15/22)
의인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인간의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의인됨으로 완전히 죄성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 성화를 통한 내적인 죄의 근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천국에 가는 '궁극적 구원'보다도 '현재적 구원'을 강조했는데, 현재적 구원 없이는 궁극적 구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종교 문 앞을 '회개'로, 종교의 문을 '신앙'으로, 종교 자체를 '경건'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을 복음을 믿기 전에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의와 신뢰를 포기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비는 마음입니다.
의인이 되고 난 후에도 죄를 짓는 순간마다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용서 받아야 합니다.(계 7/14)
웨슬리 또한 선한 일을 통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였지만 실패하고, 올더스게이트 집회의 신앙 체험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관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의인이 되는 과정은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서 성취됨으로 이루어집니다.
지킴으로써 신앙과 선행에 의한 의인화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구원에 대한 불 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 조지아주 선교 사업 실패, 모바리아 교도의 영향,
올더스게이트 체험 등을 계기로 심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웨슬리의 의인관은 루터의 '오직 은혜만'(sola gratia)으로,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의 의인관이 믿음만 강조하고 선행을 경시해 신앙인으로 하여금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웨슬리는 선행을 성화의 조건으로 볾으로써 '신앙 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믿음과 행실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죄사함으로 의인이 되고, 성령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중생으로 의인은 자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타락된 본성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의인은 죄책을 제거하지만 중생은 죄성을 제거하며, 의인은 하나님 사랑을 복귀하지만 중생은 하나님 형상을 복귀합니다.
변화입니다.
사람은 중생으로 세상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교만과 혈기로부터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즉 중생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버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다시 태어남'(be born again)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신생'은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의인'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적인 변화라면 '신생'은 인간의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첫째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경건한 삶인 성결을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만 합니다.
둘째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절한 구원을 위해 필요합니다.
셋째 중생은 천국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합니다.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를 보여주게 됩니다.
웨슬리는 중생의 첫 번째 표적으로 '믿음'을 강조하였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확고한 의뢰와 믿음이며, 모든
죄를 이기는 힘과 그 결과로 오는 평안입니다.
중생한 자는 이 소망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늘 기쁨과 희망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중생의 세 번째 표적은 '사랑'으로 변함 없이 주를 사랑하며, 주와 한 영혼으로 결합되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게 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중생한 자는 거룩하고 완전한 상태인 성화를 지향합니다.
중생이 '다시 태어남'(출생)에 중점이 주어졌다면 성화는 '성장함'과 '온전해짐'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웨슬리는 중생을 성결과 성화의 시작으로 보았지만, 성경에서 구원 받기 위한 중생은 성화를 포함합니다.
해야 하며, 믿음 안에 머물러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중생한 자에게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성결도 강조합니다.
의인과 중생은 성화의 입구에 해당하며, 중생한 자는 완전 성화까지 계속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중생한 자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을 가집니다.
'완전 성화'는 구원의 완성이요 구원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호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선행이 의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자동적 열매라는 루터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신앙 지상주의, 도덕 무용론
등을 비판하고 선행은 인간의 의지가 동반된 신인 협력적인 일로 보았습니다.
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비슷하나 칼빈이 성화가 성령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은 반면에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 의지의 책임적 응답에 의한 성화'를 강조했고, 칼빈과 달리 이 세상에서 완전 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속세를 등지고, 금욕 생활을 하며,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고행적 수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전통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향을 받아 신학적 골격을 아므미니안주의에 입각해 세웠고, '신인 협력설'(synergism)을 주장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자유의지로 받아들여 믿어 구원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구원 받은 사람도 자유의지로 타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장소가 하나님과 관련지어질 때에도 거룩하다고 불리며, 어떤 객체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성결'이라고 하고, '거룩하다'와 '성결하다'는 같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sanctification' 또는 'becoming holy'로 표기됩니다.
'성화'는 죄에서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체험적 의미가 강한데 비해, '성결'은 성화를 통해 거룩해진
결과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성령의 최고의 열매이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준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란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고, 구원의 최종 조건으로 간주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전파하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교우를 친 형제 자매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늘 계명이자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마태 22/32~36)
웨슬리의 '성화'는 루터의 믿음에 의한 '신앙 의인'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행위가 믿음을 온전케하고 증명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선행과 복음 사역을 할 때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것을 보면 믿음과 행함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성령'이며, 성화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화는 스스로 이룰 수 없으며 성령을 통해 끊임 없는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즉 성화는 온전한 진리와 믿음의 바탕 위에 성령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칭의와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관계적 성화'라고도 합니다.
관계적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이며 내 과거의 죄를 용서 받은 상태입니다.
관계적 성화를 이룬 사람은 영적 성장을 거쳐 온전한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점진적 성화 (gradual or progressive sanctification)
점진적 성화 기간동안 주님을 믿고 의지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시험·유혹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죄사함을 받았어도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의 유혹이 있는 순간마다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또한 내 스스로 육신을 이길 수 없으므로 자아를 버리고 주님 뜻에 맡겨 성령이 작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3.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기 성화는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는 순간적인 체험이라면, 온전한 성화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일소하고 주님과 하나되 경건하고 깨끗해지는 체험입니다.
'온전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가 계속 되다 보면 죽기 전에도 어느 순간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4. 영화 (glorification)
영화는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이며, 그는 죽음과 함께 영화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온전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는 것을 명심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기도합니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는 그를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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