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 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본문 바로가기

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표적과 기적이 있는교회

믿음과 사랑의교회     영혼구원하는교회

킹덤빌더교회 온라인헌금: 기업은행 238-044092-01-012 이상열

부설:킹덤빌더선교전도센터

신유 말씀치유집회 문의:이상열목사 010-3438-1859

신앙생활같이하실분모십니다: 논산계룡 대전 공주 부여 익산 전주 금산 

킹덤빌더교회는 논산계룡에 있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상열목사페이스북

새로운피조물선포기도



회원로그인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장3절4절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피조물 고백기도

 

나는 영생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사탄을 정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나는 믿음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되었습니다.나는 거룩한자입니다.

나는 모든것을 탁월하게 할수있는 은혜가 있습니다.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며 하나님의 생명과본성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영생은 나의것입니다.의는 나의것입니다.

죄를 죄거함은 나의것입니다.구원 구출 해방 자유는 나의것입니다.

치유와 신성한건강은 나의것입니다.형통은 나의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있습니다.나는 아가페 사랑을 할수있습니다.

나는 지혜가 있습니다.나는 상황을 바꾸며 항상 승리하는자입니다.

나는 내인생의 선지자입니다.나는 영혼구원자이며 킹덤빌더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 모든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 모든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사 우리를 영광스런 아버지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개혁)킹덤빌더교회목사 이상열목사 

                                                                                     

                       기독교신앙상담:이상열목사 010-3438-1859 

 
이상열목사후원 :기업은행 010 3438 1859 이상열
https://www.youtube.com/watch?v=5PgJuiA-VR4&list=PLQbQC5EwiO6SPzjrLHRedrm_dNfAOy6HU

 

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주기도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34.114) 작성일16-02-14 18:30 조회436회 댓글0건

본문

주기도문에 대한 개괄적 이해 



주기도(The Lord's prayer)는 75개의 헬라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한글로는 50개 단어 149자로 되어 있다. 이 기도에는 예수의 구원사역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주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라 할 수 있으며, 주기도 속에는 복음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고 예수의 구원사역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그렇기에 터툴리안은 주기도문을 가리켜 "복음 전체의 개요, 기도 중의 정수, 기도를 가르치는 기도"라고 말하였으며, 마틴 루터도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기도 중의 기도요, 모든 기도의 알파벳"이라 한 바 있다.
주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 부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두번째 부분은 인간의 관심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관심을 떠나 있지 않고, 인간의 관심은 하나님의 관심이 낯설지 않다. 즉, 인간의 일용할 양식, 용서, 늘 따라 다니는 유혹, 인간을 위협하는 악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일,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과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주기도에 담겨있는 현실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가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악이 지배하고 있고 정의와 사랑과 평화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은 더욱 투명하고 간절해진다. 여기서의 핵심은 "아버지와 우리가 만남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이는 우리의 전인적(total humanity) 삶 속에서 아버지의 뜻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주기도는 모든 시대에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개인과 사회가 만나게 되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과 살아있는 만남을 누리는 것이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하여 제자들이 인간적인 관심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이 일상 속에 있으며, 일상사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삶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A. 주 기도의 탄생 동기(눅 11:1-4)
누가복음 11:1에는 이 주기도가 나오게 된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기도의 형식이나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의미도 있지만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달라"는 뜻이다. 종교의 내용은 그 기도의 내용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기도는 그 종교의 가르침과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기도자의 '궁극적 관심'이 기도를 듣는 신의 뜻에 부합될 때 그 기도는 신과 인간의 유기적 만남을 가능케 하고, 그 만남을 통해 현실의 삶에서 신의 뜻을 깨닫고 또한 펴나가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도'는 단순히 복을 구하는 것이나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그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한 주문이어서는 아니 된다. 기독교의 기도는 '나에게서 하나님께로'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로' 오는 신비한 합일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신앙적 삶의 내용이 되며 그 토대로서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켈만은 "기도는 기술이 아니고 정신"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푸념을 늘어놓듯, 주문을 외우듯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도자의 중심에서 나오는 신앙의 고백이야말로 정리된 것이어야 한다. 정리된 기도는 한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조(Creed)와 같다. 서구의 교회를 보면 예배를 위한 책을 예배서(Book of Worship)라고 하지 않고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도가 곧 예배의 내용이고 신앙의 내용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인 복음 즉,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당시 랍비들이나 요한의 제자들은 훌륭한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막 태동하고 있는 예수 공동체에는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유대종교적 관습의 한 틀 안에서 제자들은 기도의 한 전형(model)을 가르쳐 달라고 자기들의 선생(랍비)에게 요청한 것이다. 이 요청에 따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초기에 {주기도} 혹은 {제자들의 기도}라고 불려졌고 이 이름은 편의상 부르던 것이 후대에 관행으로 이어져 주기도문 혹은 주의 기도라고 불려지고 있다.
B. 주 기도의 대체적 윤곽
a) 구성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
첫째 기도 :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 
둘째 기도 : 하나님 나라 임재를 위한 간구 
셋째 기도 : 하나님의 뜻 실현 청원
2) 사람을 위한 기도
넷째 기도 : 일용할 양식을 구함 
다섯째 기도 : 사죄의 은총을 구함 
여섯째 기도 : 유혹과 죄악에서의 구원 간구
3) 송영 : 하나님을 높임(나라 권세 영광) 
b) 주 기도에 내포된 9가지 관계
 
하나님
성도
주기도문
특징
1
아버지
자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관계
2
피경배자
경배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경배
3
백성
나라이 임하옵시며
4
주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복종
5
공급자
수요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믿음
6
사면자
죄인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회개
7
조력자
연약성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신뢰
8
구원자
유전된
부패성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구원
9
존엄자
찬양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영감

c) 특징
1) 간결하고 명료한 기도문체
2) 우선순위와 연속성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개인을 위한 기도가 혼합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면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다음으로 개인의 기도를 드린다.
3) 포괄성과 완전성
이 기도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필요에 대한 기도가 완전히 녹아있다.
하나님의 뜻 - ① 영광 회복 ② 나라 건설 ③ 뜻 성취 
인간의 필요 - ① 육을 위한 양식 문제 ② 혼을 위한 보호 문제 ③ 영을 위한 용서 문제
4) 하나님 중심
이 기도는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끝을 맺는다. 기도의 근본 원리는 하나님 아버지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주권자가 되신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C. 예배에서의 주 기도의 위치문제 . 예배에서의 주 기도의 위치문제
1) 초대교회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
초대교회 이전 이미 예수께서는 기도의 모델을 가르쳐 주셨다(마태 6:9-13, 누가 11:1-13). 우리는 이 기도를 '주의 기도', '주기도문' 또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라고 부른다.
예수 이후 초대교회의 예배는 가르침(성서낭독과 설교), 교제(코이노니아와 공동식사), 떡을 뗌(주의 만찬), 찬양, 기도 등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기도모범을 따라 예배의 한 요소로서 주의 기도를 고백하였다.
이 기도는 W.Nagel에 의하면 갈 4:6의 아바 아버지란 칭호와 롬 8:5의 같은 언어사용과의 관련에서 초대교회의 예배 속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2) 초기 로마교회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
이 시기의 예배는 초신자 예배(missa catechumenorum)와 믿는 자들의 예배(missa fidelium)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주의 기도는 후자인 믿는자들의 예배에서 드려졌다. 이 기도는 헌금, 헌물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친 후 이어지는 '감사제물에 대한 기도'의 일부분으로서 드려졌다. 다시 말해 예배에 있어서 주의 기도는 봉헌 기도와 성찬의 교제(communio) 사이에 있었다.

3) 동방교회의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
동방교회의 예배는 준비예배, 세례 청원자의 예배, 믿는 자들의 예배라는 삼중구조를 가졌는데 동방교회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도 언제나 세 번째 예배인 '믿는 자들의 예배'에서 성찬식 직전 '중보의 기도' 직후에 드려졌다.

4) 중세시대의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
중세시대의 예배는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의 이중구조를 가졌다. 주의 기도는 '성만찬 예배'를 이루는 예배의 한 요소로서 '성찬기도'와 '하나님의 어린양' 사이에 드려졌다.

5) 종교개혁시대 예배에서의 주의 기도
(1) 루터의 예배 : 루터는 설교 후 성찬 직전에(더 자세히 말하면 '성찬의 경고' 직전에) 주기도문을 석의 하였다.
(2) 쯔빙글리의 예배 : 쯔빙글리는 종교개혁가 중 가장 급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예배는 지극히 단순하게 진행되었다. 그의 예배에 있어 주기도문은 초반부에 위치하였다. 두 번의 이어지는 기도(올바른 말씀 청취를 위한 기도, 정부를 위한 기도) 직후 주의 기도가 드려졌다, 설교나 신앙고백, 주의 만찬은 모두 주의 기도 이후에 드려진 순서였다. 이 점은 다른 예배모델에서의 주기도문의 위치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칼빈의 예배 : 칼빈의 예배에서 주의 기도는 회중의 시편찬송 이후, 설교전 설교자의 기도 직전에 드려졌으며 설교 후 기도에 이어 다시 한번 주기도문을 석의하였다. 칼빈의 예배에 있어서 주의 기도는 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순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D. 주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함 . 주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함
이상에서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주의 기도는 지극히 예전적인 형태로서 성만찬 예전에 속한다. 이 기도는 초대교회에서부터 개혁자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배예전의 큰 축을 유지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로 밝혀졌다.
주의 기도가 성만찬 예전에 속하여 있었다는 것은 이 기도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암시한다. 물론 예배의 어느 요소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으나 성만찬을 하나님과 인간의 합일의 사건으로 볼 때 주의 기도는 이 사건에 이르는 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사람의 필요 청원이 그것이다.
예수의 성육신과 삶과 죽음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사건이었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던가? 예수에게 신성과 인성이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혼합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은 채' 있으며 예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 삶과 인간을 위한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셨기에 그가 가르치신 기도마저도 제자도(弟子道)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 자신을 보여주는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의 기도는 우리의 입으로 하여금 종말론적 신앙을 고백하게 한다. 그것은 교회가 종말론적 공동체이기에 교회가 드리는 기도 또한 종말론적 기도라는 말이다. 주의 기도는 예수와의 육체적 이별 후에 임박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 제자 공동체에게 주는 사명인 동시에 축복이며 희망의 정표(情表)였던 것이다.
주의 기도는 박해로 인한 질곡이 극에 달하고 모든 인간적 희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될 제자 공동체의 상황을 직관하는 예수의 사랑의 선물이다. 예수는 이 기도에서 질곡의 상황(sitz im Leben)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신다.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뜻 앞에 바쳐져야 한다. 예수는 우리가 비록 인간의 한계상황에 맞닥드려진 고통스런 현실 한가운데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친밀한 아버지 "압바" 앞에서, 그를 부르고 그를 힘입어 새 세계를 얻으라고 기도를 가르치신다.
이 기도의 시작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라는 송영(doxology)으로 시작되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송영(doxology)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성경에 이른바 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삶은 물론 기도의 목적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하여야 할 간구의 내용이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다. '나라와 의'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기도는 모두 이방인들의 간구일 뿐이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의 모임에서도 주의 기도는 가장 빈번히 드려지는 기도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드리는 주의 기도가 얼마나 형식적인 기도가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주의 기도를 가르치시기 직전 이미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드리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영혼의 진한 고백없이 반복적이고 형식적으로 주의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지는 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뿐이다. 우리의 삶과 예배에 있어서 주의 기도는 신령과 진정을 다해 드려지는 고백적 기도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기독교인의 모임을 마무리짓는 한 형식으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성례전적 경건과 기쁨, 하나님의 임재의 감격으로 이 기도가 드려질 때 주의 기도는 종교적 주문(呪文)이 아니라 주님이 가르치신 '바로 그 기도'가 되는 것이다. 

내용연구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Fiat voluntas tua, sicut in caelo et in terra.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sed libera nos a malo. Quia tuum est regnum, et potestas, et gloria in saecula. Amen.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 6:9-13, 누가 11:1-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태인들이 학살되어 죽어갈 때 그들이 울부짖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당신은 왜 이런 죄악에도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였을 때 이 수용소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찬송가 가사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과 살육의 현장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저주받은 지옥 아우슈비츠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있었는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또 다른 벽 한쪽에 이런 글귀가 선명하게 씌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라 할 때, 이 하늘은 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공간적 하늘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공간적 하늘에만 계시다면 하나님은 땅에 사는 우리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초월적 절대 타자'로서 존엄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오직 거기에만' 존재할 뿐이다. '하늘'이라는 이 표현 때문에 종종 이런 오해가 초래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만 인식하게 되고 초월은 거룩한 것이며 내재는 이에 대비되는 악이라는 이원론적 구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대한 교회의 이런 타계주의적 생각은 몰트만이 간파한 바를 따라, 상호 순환하고 침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에 근거하여 볼 때,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연과 우주와 인간에게 오시고 또한 유기적 관계를 맺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지극히 이교적인 이해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대한 바른 이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님을 일컬어 '하늘'에 계시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편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기도의 본문에서 {하늘에}라는 단어는 두 번 사용되었는데 한번은 단수로, 또 한번은 복수로 사용되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에서는 단수(ouvranw/| 우라노)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의 하늘은 일정한 지시적 장소에 가깝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이란 본 절의 표현은 복수(toi/j ouvranoi/j 토이스 우라노이스)로 쓰여졌는데 이는 편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주와 자연과 세상에 그리고 공간적 의미에서의 땅과 하늘에 더 나아가 사람의 전인격에 계셔서 삶과 역사를 주관하시며,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누구도 하늘에 있지 못하다. 이 말은 인간은 공간을 초월해 편재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에 이것은 '하늘'이라는 초자연성과 '아버지'라는 친밀성 즉, 초월과 내재, 두려움과 사랑의 지평융합을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시다고 말할 때 이 말은 하나님의 실존과 주권이 만물 가운데 있으며 만물에게 미침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행 7:49)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 8:27)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우리 아버지
『미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있는 농가에 취학통지서가 날아왔다.
이 마을에서 학교를 가려면 들짐승들의 위협이 현저한 산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두려움에 학교 가기를 주저하는 아들에게 안전한 보호를 약속하고 등교를 하게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들은 용기를 내어 학교를 선택했다. 아들이 믿은 것은 오직 아버지의 약속뿐이었다.
그렇게 산길을 걸어 등교하던 어느 날, 산길 굽이굽이 한참을 지나가던 중 그만 한마리의 큰 곰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몸집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덤비는 집채만한 곰의 포효에 소년은 그만 발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소년은 이제 곧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자기를 보호해 주시겠다던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곰의 커다란 앞발이 소년을 덮치려 높이 들렸다. 소년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탕!'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에 놀라 눈을 뜬 소년의 눈은 더욱 휘둥그레졌다. 자기를 해치려 달려오던 그 곰이 그만 자기 앞에 엎어져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먼발치 숲 속에서 급히 뛰어 오는 사람의 기척이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가 사냥용 총을 들고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번도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남자답게 커 가는 아들의 모습을 위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독립심을 아들에게 길러주려 아들이 모르도록 숨어서 지켜왔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막 14:36을 보면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하나님을 "압바 아버지(Abba oJ pathvr)"라고 부르셨다. 여기서 사용된 '압바'(Abba)라는 단어는 아람어에서 기원한 호격(呼格)으로서 어린아이와 가정의 언어이다. 이는 또한 성인들도 그들의 아버지나 노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할 때 사용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이처럼 익숙하고 평범한 표현을 하나님에 대해 사용한다는 것은 예수 이전에는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압바"라는 표현이 "친밀함"의 표현이라 할 때, 이 친밀함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의식하게 한다. 지금 여기에 있으며 또한 다가오고 있는 이 나라는 결단에 의해 완성된다. 이 결단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압바"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백하는 자의 아버지이다.
기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① 철학자는 "나는 내 양심에 대해 기도한다"(소크라테스)고 말한다.
② 퀘이커교도는 광명에 기도한다.
③ 범신론자들에겐 '인간이 곧 하나님이며, 자연이 곧 하나님'이다.
④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에 기울어진 이들의 숭배와 기도대상은 정령(精靈)이며 그들의 사제인 무당은 그 귀신에게 기도한다.
⑤ 아덴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절한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17:23)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Pa,ter 파테르)라고 부를 때 이 말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다. 창1:27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렇게 창조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기에 사람은 '생령'이 되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 곧 그 아들의 영(靈 : pneu'ma 프뉴마)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속에 있는 생명의 근원 곧 아버지 숨결 곧 성령에 힘입어 하나님을 '압바 바로 그 아버지'(Abba oJ pathvr)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이 외에도 우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우리의 자녀 됨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몇 곳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요1: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8:15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7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갈4:4-5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 사도는 롬 8:15-16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하였으며, 갈 4:6에서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하나님의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는 성령 안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분의 뜨락에서 그 분과의 사귐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기도의 이 절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라는 표현이다.
사63:16은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공동체 즉, 이스라엘의 아버지임을 고백하고 있다.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얻는다. 한국교회는 지금껏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동전의 두 면을 각기 하나씩만 붙잡고 서로를 인정치 않으며 한편으로 치우쳐 왔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우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공동체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이뤄진 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 공동체의 고백으로 드려질 때 진정한 사랑의 가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형제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말은 나와 너, 혹은 개인과 전체가 사랑이란 묘약으로 유기적 관계를 맺음으로 하나님 사랑의 절정에 이른다는 뜻이다.
엔드류 머레이는 '주위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효과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주기도문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여섯 번씩이나 언급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얻어 부르심을 입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 즉 교회론의 기초 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교회의 기도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생각을 여는 질문
1. 지금까지 지나 온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 왜 그렇게 느꼈습니까? 
2.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의 어느 영역에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목록

Total 254건 1 페이지
기독교 귀신 질병치유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254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2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생활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68 0
253 유대 민족 역사 (3)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60 0
252 기도에 관해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58 0
251 감리교 25개조 종교강령(1784, John Wesley) - 신조(신앙고백)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5 455 0
열람중 주기도문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37 0
249 토지무르기 법(고엘제도, 기업을 무를 자)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35 0
248 성령의 열매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29 0
247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13 0
246 방언기도의 유익 (조용기 목사 세미나)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5 403 0
245 존 웨슬리-1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401 0
244 귀납적 성경공부의 예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396 0
243 유대 민족 역사 (6)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394 0
242 존 칼빈-1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392 0
24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4 389 0
24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1788) - 신조(신앙고백) 인기글 킹덤빌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5 383 0
게시물 검색

기독교신앙상담:이상열목사 010-3438-1859 

로운피조물 고백선포기도

1.나는 새로운피조물로서 하나님의본성과 생명을 가지고있습니다.

2.나는 하나님의걸작품이며 하나님의 의로 의로워졌습니다.

3.나는 죄로부터 깨끗히 씻겨졌습니다.

4.나는 어둠에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5.성령께서 내안에 거하십니다.

6.그리스도 예수안에있는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7.나는 생명안에서 다스리는자입니다.

8.나는 의인입니다.나에게는 더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9.치유와건강 번영 형통 기쁨은 나의것입니다.

10.나는 모든일에 승리하는자입니다.

11.나는 아가페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2.성령님과 동행하는 나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13.나는 아가페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14.내안에는 믿음이 있고 나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gJuiA-VR4&list=PLQbQC5EwiO6SPzjrLHRedrm_dNfAOy6HU 

 

 



접속자집계

오늘
234
어제
413
최대
424
전체
191,406


Copyright © http://gkswjddhr.cafe24.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